북한이 주장한 평양 상공에서 대북전단 살포하는 남측 무인기. 연합뉴스평양 상공에 출현한 무인기를 둘러싸고 남북이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추가 정보를 떠보고 우리 군은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한다. 이를 기화로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불신을 조장하는 담화까지 냈다.
고도의 심리전 속에 남북의 불신이 선을 넘다보면 '비례적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남북의 충돌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떠보는 北 vs 전략적 모호성 南
북한은 지난 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국 무인기의 침범을 주장하면서 평양 상공에 출현한 무인기와 대북전단 영상, '묶음통'에 담긴 대북 전단 등을 공개했다.
그러나 무인기 기체 등 후속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북한이 무인기 기체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공개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외무성 성명에서는 무인기를 보낸 주체로 '대한민국'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남한 군부인지 탈북민단체인지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포괄적으로 '대한민국'을 지목한 것이다. 이 때 북한 외무성은 남한에 '최후통첩의 엄중경고'를 하면서도 사실관계를 떠 보는듯한 인상을 줬다.
이에 국방부는 당초 "우리 군에서 보낸 것은 없다"고 부인하고 "민간에서 보낸 것인지는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가, 이후 "사실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띠는 답변으로 입장을 바꿨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다만 "국가안보상, 작전보안상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북한 내부에서 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전략적 모호성은 북한의 향후 대응에 혼선을 초래하겠다는 심리전의 가동인데, 어쨌든 이런 설명에 따르면 우리 군이 무인기를 보낸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 軍이 아니라면 누가? 왜?
북한이 주장한 평양에 살포된 대북전단. 연합뉴스반대로 북한 당국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에 남는 가능성은 외부의 반북단체, 또는 이와 연결된 내부세력 등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이 이번에 영상으로 공개한 대북전단은 그동안 국내 탈북 단체들이 날린 전단과 디자인이 다르고 내용도 자극적이지 않다. 전단 내용은 흐리게 처리됐지만 북한이 무기를 구매하는 돈으로 얼마나 많은 식량을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영상에 나온 고정익 형태의 무인기도 국내 민간단체가 활용하는 것으로 전해진 프로펠러 드론과 다르다.
따라서 기존의 탈북민단체가 아니라면 북한 내외부의 새로운 단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추정도 나온다.
정부와 국민을 파고드는 김여정의 심리전
외무성 성명에 이어 12일에는 김여정 부부장의 한밤 중 담화가 발표됐다.
김여정 부부장은 무인기에 대한 남한의 여러 반응을 평가하며 "결론적으로는 한국군부가 직접 감행하였거나 적극적인 조장 또는 묵인 밑에 반공화국 주권침해 도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김 부부장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만 무인기가 두 번 다시 공화국 영공에 침범할 때에는 그 성분을 가리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보복 행동을 취할 것"이고, "무인기가 다시 한 번 발견되는 그 순간 끔찍한 참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여정의 담화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비난·부정하면서도 정부와 국민을 가르는 심리전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김여정은 한국정부에 대해 "국민의 목숨을 놓고 도박을 하려는 위험한 자들", "서울시와 대한민국 전역을 과녁으로 만들어놓고도, 자기 국민의 목숨을 도마 우에 올려놓고도 정세격화와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변변한 입장 하나" 내놓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국민의 지탄의 목소리만을 듣게 될 것"이고, "국민의 평가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무인기 사태의 계기에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이지만, 동시에 국민 여론과 국제사회 여론을 조성해 앞으로 추가적인 무인기 침범이 이뤄지지 않도록 압박하는 차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인기 사건의 또 다른 용도, 적대적 2국가 정당화
연합뉴스북한은 이번 무인기 사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기한 적대적 2국가론을 정당화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전날 '무인기의 평양 상공 침범'을 알리는 외무성 성명을 신문과 TV, 라디오 등 내부매체에 공개한 데 이어 13일에는 이를 규탄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노동신문 1면에 게재했다.
노동신문은 '온 나라가 통채로 분노의 활화산으로 화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분노했는가를, 이 거족적인 민심의 분출이 가증스러운 원수들에게 어떤 처절한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는가를 그대로 전한다"며,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비난과 욕설, 협박의 목소리를 게재했다.
내부적으로 대북전단 보도를 하지 않던 북한이 '무인기에 평양 상공이 뚫렸다'는 사실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파장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사건을 부각시키는 데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7일과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영토조항 신설, 통일 및 동족 지우기 등 핵심적인 헌법수정을 유보한 것으로 평가됐다. 통일을 지우는 내용의 헌법 수정을 하기에는 아직 주민들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대남 적개심을 키우고 '한국과는 통일을 할 수 없다'는 2국가론의 명분을 주민들 사이에 확산시키기 위해 이번 '무인기 사건'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전략적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면 북한이 '비례적 대응'을 명분으로 보다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고도의 심리전 속에 '최후의 통첩',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지만' 등의 표현으로 무인기 사건에서 명분을 쌓는 북한의 경고에 대해 정교한 대응과 함께 정세 관리의 필요성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