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요즘 웹툰이나 웹소설이 잘 안 팔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현실이 더 리얼하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문학에서 '개연성'은 인물의 특정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다.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죄에 해당하는 비상계엄은 이 '개연성'의 범주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과거에 계엄을 '괴담'이라고 공격했던 이들이 이제는 사과 릴레이를 하고 있다. 고려 말 무신정권의 환생 이야기라 해도 이보다 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은 기존 보수정부 대통령들과 확연히 다른 성격, 즉 '캐릭터'를 지녔다. 보수진영에서 전두환을 제외하면 이런 모험주의적 인물은 드물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모든 권력에 생존을 걸어버린 예측불가능한 인물로 변모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성공 경험과 '절대 권력'의 매력,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강화학습의 결과로 그의 뇌는 현실을 조율하는 능력을 상실했을지 모른다. 외신에서는 이를 분열적 증세라 표현했지만, 망상에 빠졌다고 해도 크게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약 2시간 35분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된 가운데 4일 오전 국회 본관에 계엄군이 깬 유리창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황진환 기자친위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다음 날, 나는 일군의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이가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3일 밤 국무회의에서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 일방적으로 이석했고, 정진석 비서실장이 그를 만류하려 뒤를 따라갔지만 경호원에 의해 저지되었다는 후문이었다. 옆에 있던 이는 비서실장이 그런 인물이 아니라고 덧붙였고,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마치 과장된 전언 같았다.
290명의 계엄군은 왜 선관위로 달려갔을까. 내란 공범 김용현은 "부정선거를 확인하기 위해" 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반면 방첩사령관 여인형은 "계엄군 진입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며 상황 이해에 혼란스러워했다. 언론은 중앙선관위 정보관리국에 주목하며 김용현의 말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닐 것이다.
윤석열이 국회만큼이나 중요하게 선관위에 계엄군을 진주시킨 이유는 국회해산을 염두에 둔 조치일 것이라 추정된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합법적 해산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무력이나 강압만이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윤석열의 담화 발표문을 꼼꼼히 읽어보자. 그의 망상이라 해도 그 세계관은 담화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담화문은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했다"고 전제했다. 국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규정했다.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이 여기에 있다. 현재의 국회는 반국가 범죄집단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반국가 집단인 국회를 어떻게 용인할 수 있겠는가. 즉각적인 국회 활동 정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비상계엄만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은 아닐 것이다.
담화 말미에 윤석열은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못박았다. 비상계엄 해제 전 그에게는 반국가세력 해산, 즉 국회해산이라는 목표가 있다. 방첩부대장은 윤의 충실한 측근이며, 방첩부대 중심의 계엄군은 중앙선관위에서 반국가 세력 해산을 위한 명분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을 규정한다.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등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윤석열은 '반국가단체'라는 국가 안위 명분으로 국회 해산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첩사는 과거 전두환 시절 보안사의 후신으로, 이 계획을 관철할 수 있는 최적의 무력 집단이다.
일부는 이를 "가치 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다. 국민투표로 국회해산에 찬성표가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의 뇌세계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 누구도 그의 생각을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한동훈과의 면담에서조차 "계엄은 민주당의 폭거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비분강개했다.
기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 헌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을 샅샅이 뒤졌다. 방첩사 계엄군의 선관위 진주 목적을 추적했지만, 김용현의 부정선거론 외에는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십 번을 '망상'에 대해 고민했다.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를 지시했으며, 정보기관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계엄군의 선관위 미스터리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