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야당에서 연일 반도체나 AI(인공지능) 사업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당은 이에 대한 '반대' 외에는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뒤바뀐 듯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 차원의 정책 행보에 한계가 있지만, 당내에서조차 "우리가 이재명 반사체인가", "민주당보다 우리 당이 이재명을 더 많이 외치는 것 같다"는 등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野 상속세 개편 패트 추진에 與 부랴부랴 대체안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6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시대 변화를 반영해 오랜 불합리를 바로잡고 가족의 미래를 지킨다는 각오로 상속세 개편안을 준비했다"며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와 '유산세의 유산취득세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이에 대한 근거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상속세를 폐지한 곳이 많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이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사실상 민주당이 상속세 개편 관련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검토하는 등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태도로 나오자, 부랴부랴 대응하는 차원에서 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여야 협의체에서 논의 중인 추경(추가경정예산)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정부와 여당이 추경을 먼저 제안하고 야당에서 비토를 놓으면 협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거꾸로 됐다. 반도체특별법이나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도 민주당에서 먼저 띄웠고, 국민의힘은 따라가는데 바빴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작년 1월 밝힌 상법 개정을 민주당에서 추진하자, 국민의힘이 반대해 법안 통과가 무산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도 "너무 반대만 하다 보니까 우리 당은 어떤 사안이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당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당 지도부도 이에 대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정책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선제적으로 꺼내는 것은 부담스러워서다.
자칫 '조기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보이면 탄핵 기각을 염원하는 강성 지지층을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이 대표를 띄워주는 셈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잠룡들도 "反 이재명" 외엔 전략無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6일 서울 서대문구 코지모임공간 신촌점에서 열린 2025 대학생시국포럼 백문백답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그리고 미래세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제는 여권 잠룡들마저도 '반(反) 이재명'을 주장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화두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대학생 시국포럼'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4차 산업혁명 시기 AI 산업'에 대한 질문에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소환해 비판했다.
그는 "(이 대표의) 엔비디아 국가 지분 30%는 웃기는 소리"라며 "이건 화천대유를 만들자는 것 아닌가. 정치가 단순 무식한 논리로 AI 혁명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AI 물결에 우리가 숟가락을 얹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망한다"며 "정치가 발목 잡지 않고 인프라를 만들어주고 개인 역량을 발휘하고 혁신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대토론회'에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같은 당의 안철수 의원도 "이 대표의 엔비디아 30% 발언은 바보가 바보스러운 상상을 한 것"이라며 "이 대표 말을 지원사격하는 민주당 의원들도 정쟁이 목적인지 국민이 먼저인지 암울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이 AI산업과 관련해 내놓은 대안책은 "반도체 국가지원, AI 추경이나 확실하게 하자"는 것뿐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또한 "우클릭이라고 하더니 사회주의인가"라며 "이 대표가 말한 '미국의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생기면 지분 30%를 국민 모두가 나누자'는 발상은 기업 성장의 동력이 돼야 할 투자 의지를 꺾는 자해적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 시장도 마찬가지로 AI시대 대응책으로는 교과서적인 내용을 반복할 뿐이었다.
"반사체가 아니라 발광체가 돼야"
이를 두고 여당 내에서도 "반 이재명 전략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도 우리가 패한 이유 중 하나가 제대로 된 정책 공약 하나 없이 '이조(이재명 조국) 심판'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며 "반사체가 아니라 발광체가 돼야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당 기조가 '이재명만은 안 된다'에 머물러 있는데, 여기서 좀 벗어나서 제대로 된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며 "여전히 우리 당이 선제적으로 하는 건 사전투표 폐지 같은 부정선거론에 기대는 법안이나 간첩법 개정 같은 중국 혐오에 기댄 것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는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는 범죄자다', '트럼프는 안 된다'는 구호 외에는 미래 먹거리 등 민생과 관련된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진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재명의 공약을 비판하지만 결국 국민들 머릿속에 남는 건 이재명의 '기본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엔비디아 같이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답을 여당 후보들이 선제적으로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