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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SK와 1000원

    연합뉴스연합뉴스1000원. 지난 2008년 초 SK텔레콤 기업관계(CR)전략실장 ━ 지금은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 이형희와 나눈 이야기 속 금액이다. 이형희는 큰돈으로 봤고 나는 푼돈으로 여겼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가계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이루기 위해 통신사업자를 노려볼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월 1만 2000원이던 SK텔레콤 이동통신, 다시 말해 휴대폰 이용 기본요금을 1만 1000원으로 내릴 것을 요구했다.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기본요금이지만 그 무렵엔 '휴대폰 통신망을 깔고 유지하는 값'이라는 통신사업자 쪽 설명이 통했다.

    망을 모두 깐 뒤엔 유지하는 값만 들어갈 테니 기본요금도 끌어 내려야 마땅할 것으로 보였는데 사업자는 뚜렷한 내역을 밝히지 않은 채 매우 오랫동안 다달이 같은 돈을 거둬 갔다. SK텔레콤과 KT가 1만 2000원씩, LG유플러스가 1만 1900원. 세 사업자가 시장을 과점하던 때라 휴대폰 이용자는 기본요금에서 벗어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정부가 SK텔레콤에 기본요금을 내리라고 요구한 건 한국 내 1위 사업자였기 때문. 그때 휴대폰 이용자 4510만여 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280만여 명이 SK텔레콤 서비스를 썼기에 한국 내 가격 기준이 됐다. 특히 공공 재원인 전파 특정 대역을 독점해 쓰며 '분기마다 이익 수천억 원'을 내니 이용자를 위한 가격 조정 책임이 주어졌다. 실제로 한국 휴대폰 서비스 사업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을 대중화한 이래로 29년간 '적자 없는 장사'다.

    이형희는 이용자마다 1000원씩이면 푼돈이지만 SK에겐 매우 큰돈이라고 봤다. 당연했다. 2008년 초 SK텔레콤 휴대폰 기본요금을 1000원씩 내리면 3120억 원쯤 덜 거둬들여야 했으니까. 그는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통신요금을 내리라는 정치권 요구가 있다면서 '자동차 기름값 1000원' 얘기도 덧붙였다. 푼돈이어서 개인에겐 별 효용이 없는 '통신요금과 기름값 1000원씩'을 내려 유권자 마음을 사려 하고 그 등쌀에 SK가 힘들다는 것.

    이형희가 통신요금뿐만 아니라 기름값 걱정까지 했던 건 그룹 회장 최태원과 가까운 만큼 SK 전체를 헤아렸기 때문. 오랫동안 여러모로 최태원을 도왔다. 하니 통신요금과 기름값 1000원씩은 그에게 '꼭 막아야 할 큰돈'이었을 터. 그때 그가 잘 막은 덕이었는지 이명박 정부는 출범 뒤 3년 7개월여 만인 2011년 9월에야 SK텔레콤 휴대폰 월 기본요금을 1000원 내릴 수 있었다.

    정치권을 포괄한 이형희 기업관계전략이 무려 43개월 동안 다달이 3120억 원을 지킨 셈. 이용자는 '가계 통신비 20% 인하 기대치'를 푼돈 1000원으로 갈음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가입자 유심(USIM) 정보를 탈취당한 SK텔레콤이 유심 무료교체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SKT 대리점에서 유심 교체를 하기 위한 이용자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류영주 기자가입자 유심(USIM) 정보를 탈취당한 SK텔레콤이 유심 무료교체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SKT 대리점에서 유심 교체를 하기 위한 이용자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류영주 기자2025년 SK텔레콤이 큰돈과 푼돈 장단을 다시 치는 듯싶다. 지난 4월 2500만여 가입자 식별 모듈 ━ 유심(USIM) ━ 정보 해킹에 놀라 SK텔레콤을 떠나려는 이용자를 붙잡는 장단. 불안하다 못해 다른 사업자로 서비스를 옮기는 이용자를 위해 위약금을 물리지 말라는 요구를 SK텔레콤이 여태 꺼린다.

    "국가 핵심 인프라를 담당하는 기간통신사업자로서 국민의 안정적인 통신 이용, 국가 안보, 정보통신기술 발전 등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경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위약금을 풀어 주기가 어렵다는 것.

    기간통신사업자. 통신 쪽 으뜸이자 중심 사업자라는 뜻. 기간통신사업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영 안정성'이 아니라 '이용자 편익'이다. 우리가 공공 재원인 전파 특정 대역을 독점해 쓸 수 있게 허락하고,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SK가 사들일 수 있게 한 까닭이다. 대한석유공사를 사들일 수 있게 한 까닭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은 늘 고객을 사랑한다지 않았던가. 떠나는 고객 마음을 붙들 수 있는 건 위약금이 아니라 '고객 모두의 1000원을 돌려주는 진짜 사랑'이다. 진짜 기간통신사업자가 할 일이고.

    이은용이은용이은용 칼럼니스트
    - 전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 전 뉴스타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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