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청원배' 우승 보드를 든 김은지 9단. 한국기원 제공바둑계에서 '천재소녀'라고 불리는 김은지(18) 9단이 한국 여자 바둑의 세대교체를 본격화했다. 김은지는 최정(29) 9단을 무너뜨리고 생애 처음으로 세계기전(오청원배)에서 우승했다. 최정은 '오청원배'에서 3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세계 여자 바둑계의 거성(巨星)이다.
김은지는 이번 우승으로 한국 바둑 여자 상금랭킹에서도 1위에 올랐다. 그는 앞서 12월 한국 프로바둑기사 여자 랭킹에서도 1위였던 최정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다. 김은지는 16세 7개월(입단 3년 11개월) 만에 9단에 올랐다. 국내 최연소 및 최단 기간 입신(9단·入神) 등극의 기록을 한번에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9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삼방칠항 곽백맹 고택에서 열린 제8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 3번기 최종국(3국)에서 최정에게 22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통합 전적 2-1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날 최종국은 여자랭킹 1위와 2위의 격돌로 관심을 모았다. 팽팽한 대결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초·중반 주도권이 김은지에게로 넘어가며 일방적 흐름 속에서 승부가 결정됐다.
세 귀를 먼저 차지한 김은지는 좌변 백 세력에 뛰어든 뒤 맥점을 짚으며 깔끔하게 타개에 성공해 단숨에 유리한 형세를 만들었다. 이후 빈틈 없는 마무리에 최정은 판을 뒤집을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역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결국 돌을 던졌다.
최정 9단(사진 왼쪽)과 김은지 9단의 결승3국 대국 장면. 한국기원 제공김은지는 이날 승리로 최정과 상대 전적을 9승 20패로 좁혔다. 최정을 상대로 국내·세계 대회 타이틀 매치에서는 2승 5패를 기록했다. 김은지의 우승으로 한국은 중국이 8번 개최한 '오청원배'에서 6번(1·2·4·5·6·8회) 우승자를 배출했다. 또 이 대회 우승자를 기존 3명(최정·김채영·오유진)에서 4명으로 늘렸다.
김은지는 지난 5월 하찬석국수배, 11월 해성 여자기성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오청원배 우승까지 더해 올해 세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세계대회 첫 우승컵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개인 통산 열 번째 타이틀 획득의 쾌거다.
그는 상금 50만 위안(약 1억 400만 원)을 받았다. 준우승을 차지한 최정에게는 20만 위안(약 4160만 원)의 상금이 지급됐다. 이번 우승으로 김은지는 올해 누적상금 3억 원을 돌파(3억 1천만 원)했다. 이로써 여자 상금랭킹 1위에 올랐다. 그가 연간 누적상금에서 최정을 앞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김은지의 당찬 우승 소감도 화제다. 그는 10일 바둑TV를 통해 "여자 세계대회 뿐 아니라 통합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다"고 전하는 등 메이저 세계기전을 향한 포부를 전했다. 그동안 메이저 세계기전에서 우승한 여자 선수는 전무하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김은지는 어린 나이임에도 기량이 워낙 출중해 '여자 신진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며 "그가 밝힌 포부처럼 통합 세계대회에서의 우승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오청원배' 준우승을 차지한 최정 9단. 한국기원 제공 김은지와 최정은 오는 16일부터 제30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 결승전에서 리턴매치 3번기를 치른다. 최정이 설욕에 성공해 세대교체가 시기상조임을 입증할지 주목된다.
최정은 지난 5월 열린 '2025 닥터지 여자 최고 기사 결정전'에서 우승한 직후 여자 바둑의 세대교체와 관련해 "언젠가는 김은지가 여자 바둑계를 이끌어가겠지만, 나도 최대한 버텨서 다른 후배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면서 건재함을 과시한 바 있다.
이번 대회는 중국 푸저우시체육국, 구러구인민정부가 공동주최했다. 중국위기(圍棋)협회와 푸저우시인민정부가 공동 주관했다. 중국 바둑 규칙을 적용했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씩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