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하는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과 헤난 달 조토 대한항공 감독. 한국배구연맹남자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을 뜨겁게 달궜던 판정 논란이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수위 높은 발언으로 불만을 토로했던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이 사과의 뜻을 전하며 파장은 잠잠해지고 있다.
논란은 지난 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발생했다. 5세트 현대캐피탈이 14-13으로 앞선 매치 포인트 상황, 레오의 서브가 코트 구석에 꽂혔다. 중계 화면상 공은 사이드라인을 밟은 것으로 보였으나 선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이어진 비디오 판독에서도 경기 감독관은 원심을 유지했다.
결국 듀스를 허용한 현대캐피탈은 16-18로 역전패했다. 1차전에 이어 2차전까지 내주며 벼랑 끝에 몰린 블랑 감독은 경기 직후 폭발했다. 그는 "우리가 진정한 승자다.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만든 비디오 판독이 제 역할을 못 했다"며 "총재와 심판 모두가 대한항공의 굴레 안에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대캐피탈은 한국배구연맹(KOVO)에 공식 이의를 제기했다. 바로 전 상황인 13-12에서 발생한 판정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당시 유사한 궤적의 공은 대한항공의 판독 요청 결과 '인'으로 번복됐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V-리그만의 로컬룰이다. 국제 규정과 달리 V-리그는 '공이 최대로 눌렸을 때 안쪽 선이 보이느냐'를 기준으로 판정한다. 3차원 좌표를 계산하는 '호크아이' 없이 2차원 중계 화면에만 의존하다 보니 판독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고 왜곡도 피하기 어렵다.
엄지 치켜세운 블랑 감독. 한국배구연맹
연맹의 결론은 '정심'이었다. 사후 판독 및 소청심사위원회를 개최한 연맹은 "지면에 최대로 압박된 순간 사이드라인 안쪽 선이 노출된 것을 확인했다"며 로컬룰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심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블랑 감독은 3차전을 앞두고 "비디오 판독은 수명을 다했다"며 재차 질타하면서도 "분노를 기폭제로 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배수진을 친 현대캐피탈은 3차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반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승리 후 블랑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감정에 의존한 말은 삼가려 한다. 총재를 비롯해 불편함을 느꼈을 모든 분께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블랑 감독의 사과로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명확한 제도 개선의 숙제는 남았다.
연맹은 판정의 일관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연맹이 내놓은 정심 근거는 매치 포인트 상황에 국한됐을 뿐, 구단이 제기한 다른 상황과의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
결국 기술적 보완이 시급하다. 연맹은 "2026-2027시즌 도입을 목표로 인공지능(AI)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AI 시스템 도입이 V-리그의 해묵은 판정 논란을 종식하고 공정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