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 40분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광주 서구 무진대로 사거리를 가로질러 행진하고 있다. 한아름 기자29일 오전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의 거리 행진으로 광주 무진대로가 잠시 멈춰 섰다.
질주하던 자동차들의 소음이 잦아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전동 휠체어의 기계음과 "장애인도 시민이다"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1년에 단 하루. '4·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기념해 광주 지역 장애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장애인도 시민" 올해도 울려 퍼진 외침
29일 오전 10시쯤 광주 서구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아름 기자이날 오전 10시 광주 서구 유스퀘어 터미널 광장은 사람들과 깃발들로 북적였다. 이곳에 모인 200여 명의 참가자 앞에는 "장애인도 시민이다,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펼쳐졌다.
장애인 부모연대와 광주여성 장애인연대, 오방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등 다양한 장애인 단체의 깃발이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나부꼈다.
기자회견에 나선 정성주 광주 장애인 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광주는 자신을 인권도시라고 말하지만, 장애인들의 삶은 여전히 시설과 방안에 갇혀 있다"며 "전남·광주 통합특별시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 장애인들의 권리가 축소되지 않도록 명확한 계획과 책임 있는 실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 사이에는 직접 준비한 피켓을 든 이들도 많이 보였다. 장애인 권리 예산을 OECD 평균으로 증액해달라거나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개인예산제'를 시행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우리를 가두지 마십시오'라는 피켓을 든 한 참가자는 앙다문 입술로 발언자의 말을 경청하다 큰 소리로 '투쟁'을 외쳤다.
울퉁불퉁한 인도 위, 사투와 같은 전진
29일 오전 10시 40분쯤 광주 서구 유스퀘어 터미널 앞에서 장애인단체 회원이 휠체어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 울퉁불퉁하게 파손된 인도 위에서 휠체어가 휘청거리고 있다. 한아름 기자기자회견이 끝나고 오전 10시 40분쯤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됐다.
대열의 맨 앞줄에는 50여 대의 전동 휠체어가 섰고, 그 옆으로 형형색색의 깃발을 든 기수들이 자리해 중심을 잡았다. 비장애인들과 걸음이 가능한 장애인들은 그 뒤를 이어 열을 맞추며 200여 명이 이번 행진에 참여했다.
행진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열린 유스퀘어 광장을 벗어나 기아자동차 공장 방면 인도로 접어들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비장애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울퉁불퉁하게 파손된 인도가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덫이었다. 휠체어 바퀴가 홈에 걸려 덜컹거릴 때마다 탑승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걷는 한 참가자는 주변에서 "괜찮으시겠냐"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자 그는 땀방울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단호한 몸짓은 이날 행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닌 사투임을 보여줬다.
왕복 15차로가 멈춘 순간, 열린 '권리의 길'
29일 오전 10시 40분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광주 서구 무진대로 사거리를 가로질러 행진하고 있다. 한아름 기자행진의 하이라이트는 유스퀘어 터미널 앞 사거리를 건널 때였다. 광주에서도 교통량이 많기로 손꼽히는 왕복 15차로의 무진대로. 평소 장애인들에게는 결코 '건너기 쉽지 않은' 이곳에서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교통경찰의 호각 소리와 함께 신호등이 점멸등으로 바뀌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수많은 차량이 일제히 멈춰 섰다. 넓은 사거리 도로 위로 50여 대의 휠체어 군단이 당당하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늘 인도 끝자락에서 차를 피해 위태롭게 지나가야 했던 이들이 오늘만큼은 도로의 주인공이 되어 뚜벅뚜벅 나아갔다.
"검토하겠다는 말은 이제 그만…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낮 12시 30분쯤 행진 대열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광주광역시청에 도착했다.
이들은 시청사 앞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24시간 긴급 돌봄 체계 구축 △이동권 보장 △장애인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확대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당사자 참여 없는 정책은 무의미하다"며 모든 행정 결정 과정에 장애인의 목소리를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통합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그동안의 차별을 연장하는 구실이 될지, 아니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광주의 시작이 될지는 이제 정치권의 응답에 달려 있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이들 장애인은 '검토하겠다'는 빈말이 아닌 '책임지겠다'는 확답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