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 한제아 양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30년까지만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고 있는 현행 탄소중립법 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류영주 기자"우리가 크면 너무 늦습니다. 우리한테 떠넘기지 마세요. 바로 지금, 탄소배출을 훨씬 많이 줄여야 합니다"
4년 전 여름, 흑석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한제아양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기후소송단'은 지난 2022년 6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2024년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과 관련해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해당 법안에는 2030년까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만 있고, 그 이후의 감축 계획이 없어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이었다.
아기기후소송단이 나선 지 4년, 국회는 여전히 해당 법률의 손질을 끝내지 못했다. 그 사이 어린이들은 청소년에 가까운 모습이 됐고, 여전히 어른들이 나서지 못한 숙제 '기후변화'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었다.
"인기 많아질까" 시작했는데 "어린이들 걱정" 중학생 됐다
2024년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 당시 진술자로 나섰던 한제아양의 초등학교 6학년 때 모습(좌). 중학생이 된 제아양의 최근 모습(우). 본인 제공 "어린이들이 지금은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기후위기를 알게 되면, 어린이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상황이 걱정돼요"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제아양은 훌쩍 큰 키에 반소매 교복을 입고 이렇게 말했다. 4년 전 단발머리는 어깨를 훨씬 넘는 긴 머리가 됐고, 사복 대신 중학교 교복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모습은 어엿한 청소년이었다. 제아양이 '아기기후소송단'으로 기후소송을 시작할 땐 그리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뉴스에 나오고 하면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아지고 뿌듯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제아양의 관심이 보다 깊어진 것은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지구가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던 어느날 사촌동생이 무척이나 더워하는 모습을 보고 깨닫는 점이 많았다고 했다. "동생은 키가 저보다 작으니까,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 때문에 더 더울 것 같았어요"라며 "동생은 아직 기후위기 같은 걸 잘 모르는데…". 제아양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유다.
4년 전 결심을 행동에 옮겨 '헌재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성과에도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비판들. 제아양은 "인터넷에 보면 '애들이 무슨 의견이 있어서 이런 걸 하냐'는 등 악플을 많이 받았다"며 "저도 유치원생이나 완전 어린이 시절로 돌아가면 그냥 공부를 할 것 같다. 공부는 기초만 해두고 친구들이랑 놀 수 있을 때 놀고…그때부터 (기후위기에 대해) 알면 너무 우울해지고 그러지 않을까"라며 환경운동에 뛰어들며 겪었던 아픔도 털어놨다.
하지만 냉소적인 비아냥이 제아양의 마음을 접게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는 더 단단해졌다. 그는 "그렇지만 일상에서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말을 한다면 후회는 없다"면서 "지금 어린이들은 2~30년이 지나면 이 지구의 주인이 되어 있을 텐데, 지금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미래가 더 괜찮아질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이 기후위기는 심각해지고 어린이들의 피해는 커진다는 것이 제아양의 요즘 큰 고민이다. 그는 "미세먼지가 너무 심할 때나 폭염 때문에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무엇보다 요즘 꽃가루가 많이 날려 제 친구들이 기침을 많이 하고 어떤 애는 눈이 엄청 빨갛게 부었다"고 전했다. 이어 "어른들이 일군 세상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여의도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제아양은 "학교 앞 윤중로에 벚꽃이 엄청 많이 핀다. 그런데 올해 거기에 벚꽃이 핀 지 4일 만에 졌다"며 더 심각해진 기후위기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 여름마다 펑펑 트는 에어컨이 어린이들과 관련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며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몇 배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귀여운 어린이'에서 언니들에게 힘 보태는 어린이 '활동가'로
2024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 첫줄 오른쪽 아래가 정두리양. 연합뉴스4년 전보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컸다"는 정두리(11)양은 이제 실내 서핑을 배우는 어린이가 됐다. '아기기후소송단'에 참여할 때는 초등학교 1학년, 만 7세. 헌법소원을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두리양은 여전히 '어린이 활동가'의 역할을 수행할 뿐더러 그 의미도 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다. 두리양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린이 활동가로 나선 이유에 대해 "어른 활동가들도 많지만 어린이들이 힘을 보태면 어린이가 귀여우니까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요?"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두리양은 이제 기후위기를 공부한다. 알면 알수록 행동에 더욱 진심으로 나서게 됐다. 두리양은 "어른들에게 전기를 낭비하지 말고, 석탄 발전소 없애라고 말하고 싶다"며 "석탄을 태워서 전기 만들면 온실가스 나오는데 지구 더 덥고 뜨겁게 만드니까"라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강원도 삼척에도 두 번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활동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일부가 연행되는 모습도 목격했다. 환경운동이 경찰에게 잡혀갈 수 있는 일이라니. 그때의 기억은 충격적이었다고한다.
지난해 9월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두리양의 모습. 본인 제공하지만 두리양은 아직도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해 피켓을 드는 등 씩씩하게 기후행동에 나서고 있다. 두리양은 삼척에 거주하는 청년활동가들을 향해 "언니들, 나도 힘 합쳐서 도울 테니까 나중에 꼭 다시 만나서 같이 걷고 나랑 같이 놀자. 사랑해"라고 전했다.
더 뜨거워진 지구를 체감하며 앞으로를 살아갈 미래세대로서 걱정도 커졌다. 두리양은 "제가 어른이 됐을 때 지구가 더 뜨거워지고 환경이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돼요"라고 말했다. 제주도에 사는 두리양은 지난 4월 바다에 들어갔는데 물이 차갑지 않고 미지근했다며 "요즘 머릿속에 고민이 꽉 찼다. 지구가 아프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두리양도 더 많은 어린이들이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두리양은 "어린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인데 어린이들도 환경운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조그마한 실천을 조금씩 쌓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헌재는 올해 2월까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통해 2031년부터 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국회는 기한을 넘긴 상황이다. 현재 국회는 시민대표단의 숙의를 통한 '공론화'를 거치는 등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