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외국인 관광객 기념품 가게. 고상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장애인 정책을 왜 비장애인이?"…교통약자가 바라는 세상 ②세금 내고 투표도 하는데…외국인들 "우리 공약은 없어요" (계속) |
"제주에 사는 외국인을 위한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24일 제주시 연동 한 카페에서 만난 외국인 30대 남성 A씨는 이같이 말했다. 2012년 제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A씨는 2021년 영주권(F-5 비자)을 얻었다. 제주에서 직장 생활하며 세금을 내는 A씨는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부터 처음 투표하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어 난감하다"고 했다.
"외국인 공약 없는데 누굴 투표해야죠?"
중국 안후이성 출신인 A씨는 올해로 제주에서 생활한지 14년차다. 제주대학교에서 이공계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현재 도내 의료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중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도 생겼다. 가정을 꾸리며 번듯한 집도 마련했다. 외국인이지만, 일반 도민과 똑같이 생활한다.
올해는 그에게 의미 있는 해다. 영주권을 얻은 이후 처음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상 영주 체류자격을 취득한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 투표권이 주어진다. 지방선거는 국민 대표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지역에 살며 세금을 내는 주민 대표를 뽑는 선거여서다.
하지만 후보들의 선거 공보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공약을 보더라도 외국인 관련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했다.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A씨는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이기 때문에 중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외국인도 많이 거주한다. 하지만 말만 국제자유도시이지, 외국인을 위한 정책이나 공약은 아예 없는 거 같다. 다른 영주권자와 이번 선거에서 누굴 뽑을지 얘기할 때 그냥 후보 인상 보고 뽑자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영주권을 얻은 외국인 A씨. 고상현 기자 각종 정책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제
각종 정책에서 외국인은 차별받는다고 했다. "일반 도민과 똑같이 세금을 내는데 신혼부부나 육아 등 복지정책을 추진할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못 받을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우리 애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이 월 20만 원씩 나라에서 보육료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신청했더니 교육청이나 시청에서 외국인이라서 안 된다고 하는 거다. 부모 중에 한 사람이 한국 국적이어야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다. 한국 국적과 연관성이 없으면 아예 배제된다"고 토로했다.
재난지원금이나 민생회복지원금, 고유가지원금 등 각종 지원금도 제주에서 일하거나 유학생활을 하는 외국인은 받지 못한다고 한다. 영주권자와 결혼이민자만 제한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A씨는 "주변 외국인 친구들을 보면 도민과 똑같이 세금을 내며 일하고 있다. 요즘에는 한국 물가나 환율이 크게 올라서 한국에서 버는 돈을 본국에 보내지 못하고 다 제주에서 쓰고 있다.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왜 지원금 나올 때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투자해서 영주권 얻었는데 신경도 안 써"
제주에는 A씨처럼 이공계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한국어 능력이 출중해 영주권을 얻은 사례도 있지만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는 '투자이민제도'로 영주 체류자격을 얻은 외국인도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투자이민제도가 시행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주에서 모두 1990건·1조3천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법무부 고시로 지정된 제주 휴양시설에 5억 원 이상 투자하고 5년간 유지하면 영주권을 얻는다. 현재는 기준 금액이 10억 원 이상으로 늘어 투자가 주춤하는 추세다.
중국어로 적힌 제주 가게 모습. 고상현 기자지난해까지 투자이민제도로 영주권을 얻은 외국인 투자자와 가족은 모두 1826명이다. 국적별로 보면 중국인이 1750명(95%)으로 가장 많고 이어 미국인 13명, 영국·러시아인 각 4명 등이다. "투자 유치 때만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이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제주를 떠나는 외국인도 많다.
도내 한 휴양시설에 투자하고 영주 체류자격을 얻었다는 중국인 B씨는 "제주에 투자하면 여러 혜택이 있다고 해서 왔지만, 리조트 측에서 관리비를 외국인이라고 다른 곳보다 2배 이상 받았다. 다른 외국인 투자자 200여 명이 관련 민사소송에 시달리다 결국 대부분 제주를 떠났다"고 호소했다.
"제주 거주 외국인 목소리도 귀 기울여 달라"
특히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외국인 혐오로 곤혹스러울 때도 많다. 제주 온라인 기사마다 중국인 관련 내용이 아닌데도 '단골' 댓글로 중국인을 혐오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A씨는 "아파트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하주차장 원하는 곳에 세울 수 있도록 추첨하는데 제가 뽑은 면과 다른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에 배정했다. '외국인 혐오로 신고하겠다'고 항의해도 바꿔주지도 않았다. 중국인인 아내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일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누가 지역일꾼이 되는지에 따라 외국인을 향한 시선도 달라지는 것을 체감했다고 한다. A씨는 "누가 도지사가 되고, 외국인에 대해서 차별 없이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외국인 혐오가 그나마 줄어들기도 하더라. 외국에 살면서 투표가 참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A씨는 "관광으로 먹고 사는 제주에서 해마다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받으려고 하지 않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주에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제주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목소리도 많이 귀기울여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 고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