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문제의 기고문 보니…"북미협상에 주한미군 감축 연계"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최근 미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있는 그대로의 북한-차가운 평화를 위한 변론(North korea as it is-The case for a cold peace)'에서 과거 7개 미 행정부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논리에 근거해 추진한 북한 비핵화 정책은 결국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군축 및 비확산을 위한 북미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빅터 차 석좌는 지난 20년간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문제 전문가이자 대북강경론자로 활약해온 만큼 이런 입장 변화는 파격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 기고문에 대해 "정책 실패라는 규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면서 "보수 강경 시각의 학자가 이제 북한을 적의 명단에서 빼라고 얘기한 것은 굉장히 놀라운 통찰"이라고 평가하는 등 우리 정부 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빅터 차 석좌가 기고의 글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먼 미래의 목표"로 보면서 현 시점에서 북미 대화를 통한 '잠정적 해결 방안'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의 진전된 핵 능력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보복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된 핵보유국(Proven nuclear weapons state)"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핵탄두 탑재 ICBM으로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능력이 있다고 봤고, 반면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현재 배치되어 있는 미국의 요격 미사일(44기), 그리고 향후 10년 내 추가될 요격 미사일 비축량(64기)을 감안할 때 요격 방어의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지금 당장 탄도미사일의 추가시험·배치·핵물질 생산을 제한하는 북미대화의 시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빅터 차 석좌는 특히 이란과의 전쟁으로 현재 미국의 방어 전력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상대하고 있는 적대 세력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 이란과 그 대리 세력들(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로부터 "어지러울 정도의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체스 판에서 적을 치워 버리기(taking enemies off the board)" 전략 차원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빅터 차의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평상시이거나 과거라면 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감축을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 연계할 수 있고, 북한의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과 '북한 지도부 참수작전 위협'도 접어야 한다고 밝혔다.
빅터 차 석좌는 이와 관련해 북한이 '먼저 쓰지 않으면 잃는다(use or lose)'는 강박에 처해 핵을 사용하는 상황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킬 체인과 지도부 참수 위협 등 한국의 공격적 억제전략 수위를 조절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반도 내 주한미군의 감축"이라며 "이런 양보가 평상시라면 애초 고려 대상도 되지 않았겠지만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수를 자연스럽게 감축하는 안보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고, 미국은 한반도 내 지상군을 줄이는 대신 공군과 해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 중인데 "이런 변화는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수순으로 봐야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단계적인 군비축소와 방사포 배치 제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의 조치들과 관련한 북한과의 협상에 연계(can be aligned with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다만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위한 그 어떤 전략도 "동맹의 억제력 강화"를 중심에 둬야 한다면서 미국은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즉시 북한 정권을 파괴할 것임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일 3국이 "어느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은 곧 그들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안보선언'을 하는 것도 이상적인 방안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이런 새로운 전략에 대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미국이 평양으로부터 의미 있는 상응조치도 없이 중대한 양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의 주장이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란처럼 군사적 압박을 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으나 "북한은 이란이 아니다"라며 "북한의 핵 무력이 괴멸적 피해의 위험 없이 제거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인의 의식 속에 스며있는 "너 죽고 나 죽고 다 죽자(If I die, you die, we all die)"는 심리를 언급하며 핵전쟁의 도박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경제 및 금융제재를 강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그 효과는 과거보다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 19기간 북한의 자체 국경봉쇄에도 체제가 작동했다는 사실은 "제재가 평양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직면한 현실은 미국 본토의 안보를 보호하고 인도 태평양 지역의 핵 확전을 막기 위한 잠정적인 해결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차가운 평화(cold peace)'는 이상적인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점점 더 위험해지는 관계에 더욱 더 요구되는 안전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빅터 차의 기고는 미국 본토 및 국민의 안전, 미국 국익의 맥락에서 북핵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호소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미대화가 재개될 경우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계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26.05.0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