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으로 힘 실린 경찰, 정말 재난인가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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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검수완박' 논쟁 국면에서 공개적 입장 표명 등을 자제했던 경찰이 관련 법안 국무회의 공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일각에서 지적 받는 경찰의 수사 역량에 대해 자신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한편, '검수완박'에 따른 후속 작업 논의도 본격화한 것이다.
특히 검찰이 '검수완박' 반대를 위해 여러 사건 사례를 들며 '경찰에서 규명하지 못한 진상을 검찰이 밝혀냈다'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서도 경찰은 '사실과 다르다'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경찰이 사건 초반, 백지부터 진행해 온 수사를 검찰이 보완을 한 것일 뿐이며, 경찰 수사를 과장해서 폄하하려는 의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남용된 사례를 감안하면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다'를 따지는게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수사에 있어 검찰과 경찰은 협력하고 때론 대립하면서 시너지 및 견제 효과를 내왔다. '검수완박'으로 균형의 변화가 예상됨에 따라, 힘이 실리는 경찰의 역할이 더욱 주목되는 양상이다. 동시에 수사 과부하, 인력 및 예산 문제 등 당장 풀어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있다.
警 "6대 범죄 수사 계속해왔다"…檢 '검수완박' 반대 사례 '반박'
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검수완박' 법안 국무회의 통과 이후 경찰 내부망에 서한문을 올려 "통과된 개정안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축소하고 있으나 경찰수사 체제는 큰 변화 없이 기존 틀을 유지하고 있다"며 "흔들림 없이 본연의 업무에 임해 우리의 각오와 역량을 한 걸음씩 증명해나가자"고 말했다.
'검수완박' 법안에 따르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기존 6대 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부패·경제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대폭 축소된다. 법 시행 유예 기간은 4개월이며, 6월 지방선거를 감안해 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권은 12월 말까지 유지된다. 또 검찰은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완수사가 가능하고, 별건 수사는 금지된다.
검찰에 있어선 수사권 대폭 박탈이지만, 경찰은 '이미 대다수 6대 범죄 수사를 해왔다'며 표면적으론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사 수사개시 범위에서 제외된 4가지 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도 검찰보다 경찰이 많이 처리해왔으며, 전체 범죄 처리 건수에 비춰 1% 미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검수완박' 반대를 위해 검찰이 내세운 각종 사건 수사 사례들도 무리한 주장이거나 오류가 상당하다는 게 경찰 내부 판단이다.
일례로 2016년 3월 발생한 '원영이 사건'을 사례로 든 검찰은 "경찰이 사체를 발견하지 못해 계모와 친부를 아동학대로만 의율하자, 검·경합동수사회의를 통해 암매장 사체를 찾아냈다"며 "검찰 송치 후 소아과 전문의 자문, 계모와 친부 추가조사, 판례 검토를 통해 사망일시와 사망원인을 밝혀 계모와 친부 둘 다 살인죄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밝히지 못한 사안을 검찰이 규명해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경찰에서 살인죄로 의율했고 사체 발견도 경찰이 했다"며 "합동수사회의라고 하는데, CCTV 분석 · 차량 이동 조사 등으로 가뜩이나 바쁜 수사팀장을 검찰이 불러내 얘기 한번 들은 게 끝이었다. 그때는 왜 불러냈는지도 이해도 못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죄명도 검찰이 송치 전날 오라고 하더니 살인죄로 하지 말고 아동학대치사죄로 보내라고 했다"며 "경찰에서 살인죄로 송치 했는데, 자기들이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만 그때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검사가 바로 청구해줘서 수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 측면이 있다"며 "누가 잘못했다고 탓할 사례가 아니라, 협동이 잘된 전례로는 인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전 연인으로부터 결별을 통보 받자 전 연인의 중학생 아들을 허리띠로 목 졸라 살해한 제주 중학생 살인 사건도 검찰의 '검수완박' 반대 사례 중 하나다. 검찰은 "경찰은 공범 2명을 살인 등으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으나 공범들은 범행을 부인하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태였다"며 "검사는 살해 도구인 허리띠의 DNA 감식, 행동·심리 분석 등 과학수사를 통해 공범 2명 모두의 가담 사실을 명확히 규명했고, 공범들은 1심에서 각각 징역 30년, 27년을 선고받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범행 도구인 허리띠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범인들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러 범행 도구에서 범인들의 DNA · 지문 등을 찾아냈고 CCTV 영상 · 휴대전화 포렌식 등으로 증거를 다수 확보해 범인 2명을 살인의 공동정범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검찰이 허리띠의 DNA를 찾아내 증거를 보강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것 만으로 규명하지 못한 사건 실체나 가담 행위들이 밝혀졌다고 주장하는 건 오류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 3월 발생한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 역시 검찰만이 실체를 규명했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경찰이 구속 송치한 서울시의원이 묵비권을 행사하자 검사 6명이 20여일 간 7곳 압수수색, 핸드폰·컴퓨터 20대 분석, 차명계좌 추적을 거쳐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여 기소했고 무기징역이 확정됐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범행 사흘 만에 중국으로 출국한 피의자를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를 통해 검거했다. 이후 한국으로 인도한 뒤 '서울시의원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살인을 했다'는 진술을 받았고, 해당 시의원을 체포해 수사를 진행했다. 피의자와 시의원의 돈거래, 통화 내역, 범행 도구,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해 살인교사 혐의로 시의원을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해 실체를 규명했다고 하지만 대부분 경찰이 수사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내세운 사건들 중에는 검경 '협력 사례'도 상당하다.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5일 전국 성폭력 사건 전담 평검사들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일명 '박사방', 'n번방' 사건과 같은 조직적 범행을 엄단할 수 있었던 것은 수사권이 있는 검사와 경찰이 상호 협력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성범죄에 대응했기 때문"이라며 "중재안이 통과되면 저희 성폭력 사건 전담 검사들은 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n번방' 최초 개설자 '갓갓' 문형욱을 검거했다. 또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020년 3월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출범해 12월 말까지 총 2807건을 단속해 3575명을 검거하고 245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장 단계에서 검경이 적극적으로 협업을 한 우수사례"라며 "송치 이후에도 각종 사실관계 파악 등 보완수사 협업도 잘됐다"라고 밝혔다.
결국 경찰이 밑그림을 그린 수사에 검찰의 추가 보완 등이 이뤄졌고, 또 한편으로는 협력 등이 진행됐기 때문에 기관 간 수사 수준 차이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인 셈이다. 경찰이 초동 수사에서 일부 오류를 범한 경우도 있지만, 검찰이 오판을 하거나 수사권을 남용해 논란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警檢 협력과 견제 '시너지'…檢 수사권 남용 사례도
2016년 9월 발생해 논란이 됐던 고(故) 권대희씨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권씨는 강남 소재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집도의는 여러 수술실을 돌며 수술을 했으며 간호조무사 등이 수술을 맡기도 했다. 유족은 업무상 과실치사 및 의료법 위반혐의로 고소했으며 경찰은 수술실 CCTV와 의료행위 감정 등을 통해 모든 혐의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경찰 송치 8개월이 지난 후에야 수사에 착수했고 과실치사 혐의로만 기소하고 의료법 위반 혐의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간호조무사에 대한 의사의 지휘·감독이 있었으므로 무면허 의료행위는 아니라는 취지였지만 무리한 법리 적용이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담당 검사와 피의자 측 변호사가 서울대 의대, 사법연수원 동기였다는 점에서 봐주기 의혹도 언론에서 제기됐다.
유족 측은 이에 반발해 법원에 재정 신청을 냈고 서울고법은 '간호조무사는 간호나 진료의 보조 업무만을 할 수 있음에도 위급한 환자를 30분 넘게 간호조무사에게 의료행위를 시킨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는 취지로 재정 신청을 인용했다. 이후 지난해 9월 1심에서 병원장은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3년 선고돼 법정구속됐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의혹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윤 전 서장은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의 친형이다. 경찰은 2012년 2월 육류 수입업자 김모씨에 대한 수사를 하다 윤 전 서장과의 돈거래를 포착해 내사를 진행했다. 이후 그해 7월부터 윤 전 서장과 김 씨가 골프를 쳤다는 인천 영종도 소재 A 골프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7건을 신청했지만 6건이 기각됐다. 윤 전 서장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자 현직 세무서장 신분임에도 외국으로 도피했고, 8개월 뒤 태국에서 검거돼 국내로 압송됐다.
2013년 4월 경찰은 윤 전 서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불청구됐고, 7월 재신청했지만 또 다시 불청구됐다. 결국 8월 윤 전 서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지만, 검찰은 직접 수사를 통해 2015년 2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육류업자 김씨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고 대가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2019년 7월 주광덕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윤 전 서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고발했고 지난해 12월 검찰은 윤 전 서장에 대해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이밖에 최근 사건으로는 '부장검사 교통사고 사건'이 꼽힌다. 지난해 7월 A 부장검사는 올림픽대로 4차로에서 5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차로 사이에 있는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이 과정에서 5차로를 주행 중이던 피해자의 볼보 차량과 충돌했다. 경찰은 안전지대를 침범했고 12대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안전지대 침범 행위가 있었더라도, 충돌 지점이 안전지대 밖이면 사고 원인을 안전지대 침범으로 볼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와 유사한 사건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가 인정된 판례가 수두룩해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警 수사 역량 입증, 신뢰도 확보 시험대…인력·예산 확보 관건
결국 '검수완박' 이후 경찰의 최대 과제는 수사 역량 입증과 신뢰도 강화로 보인다. 그간 협력 수사로 성과를 냈던 만큼 이제 검찰의 역할까지 경찰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왔으니 어깨가 한층 무거워진 셈이다. 경찰의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판이나 수사권 남용 사례가 경찰 차원에서 일어나고 견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특히 경찰의 수사 인프라 강화는 과제 중에 과제로 꼽힌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인력을 증원했지만 '과부하' 문제는 여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1인당 사건 접수 건수는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보유 기간이 늘어나고 처리 시간도 상승하는 등 '사건 적체'가 심화하자 경찰은 대책 마련에 고심해 왔다. 일선 부담과 함께 자칫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청장은 "지난해 수사권 조정 이후 일선 수사 현장에 부담이 가중돼 있음을 잘 알고 있고, 인력·예산 등 수사 인프라 확충과 함께 현장 경찰관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력·예산 확보 등은 관계부처 협의 등이 진행돼야 하는 사안이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22.05.04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