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주름 잡던 대백, 롯데·현대백화점 위기…극복 고심[유통가 줌인②]
"대구의 쇼핑 시장을 보면 신세계가 거의 휩쓸고 있다"
지난 10일 롯데쇼핑과의 합의체결식 자리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의 발언.
신세계의 약진. 이는 앞서 지역 유통가를 주름잡던 선발주자들에겐 위기가 됐다.
▶ 글 싣는 순서 ①대구 삼킨 신세계…백화점·마트에 아웃렛까지
②대구 주름 잡던 대백, 롯데·현대백화점 위기…극복 고심
(계속)
1969년 12월 문을 연 전국 유일의 향토 백화점인 대백 본점은 2000년대 초반까지 수십 년간 지역 1위를 유지했고 서울 백화점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속속 대구에 점포를 내며 점차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브랜드 유치, 프로모션 마련 측면에서 대기업 유통 업체에 비해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동성로의 유동인구가 줄어든 것도 대백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과거 대구의 최고 번화가였던 동성로는 최근 5년 사이 급격히 쇠락했다. 오랜 기간 중심지였던 탓에 시설 노후화 등의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고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의 철수가 이어졌다. 획일적인 유행이 쇼핑 트렌드를 지배하던 시대에서 개성과 캐릭터가 중요시되는 시대로 변화가 이뤄지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골목 곳곳으로 분산됐다. 동성로를 찾는 이들이 줄어들자 대백도 한산해졌다.
특히 2020년 초, 코로나19가 대구를 강타하면서 거주 인구가 적은 동성로는 행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됐다. 대백은 결국 약 1년 반밖에 더 버티지 못했다. 동성로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대백 본점은 지난 2021년 7월 1일부로 영업을 중단했다. 당시 대백은 '잠정 중단' 또는 '휴점'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미 적자 상황 등으로 보아 영업 재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후 대백은 본점 매각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난항을 겪고 있다. 양수도 계약을 맺었던 JHB홀딩스가 지난해 10월 최종적으로 잔금을 치르지 않으면서 계약이 무산된 것. 매각 의사가 있는 새로운 주체를 찾고 있지만 아직 진전은 없는 상태다.
대백과 함께 유통업계 쌍두마차로 불린 동아백화점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상권 침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동아아웃렛(옛 동아백화점) 본점은 대백보다 1년 일찍, 개점 47년 만에 문을 닫았다.
현재 대백엔 대봉동 대백프라자가, 동아엔 반월당 쇼핑점과 범물동 수성점이 남아있다. 다만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 자체가 줄고 있고 신세계뿐 아니라 롯데, 현대와 경쟁해야 해 상황이 좋을 순 없다.
롯데는 2003년 대기업 유통업체 중 처음으로 대구에 진출했다. 동성로와 가까운 대구역에 대구점을 냈고 이듬해에 상인동에도 진출했다.
롯데도 대백, 동백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활발했던 동성로 상권 덕을 톡톡히 봤다. 인접한 동성로의 방문 인구가 많이 유입돼 '시장가 중심'이라는 불리한 입지 조건을 이겨냈다. 또 당시만 해도 고속열차가 없던 때로 대구역 이용이 활발했던 시기다. 롯데는 타지에서 오가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러나 8년 만인 2011년 현대백화점이 근거리인 반월당에 대규모 점포를 내며 롯데의 첫 위기가 시작됐다. 이어 2016년 신세계의 대구 입성, 동성로 쇠락 등으로 롯데의 명성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위기를 의식한 롯데는 지난 2021년부터 참신한 변화에 나섰다. 지역 백화점 최초로 대구점 내부에 골프연습장 GDR아카데미와 롯데캐슬 모델하우스를 유치했다. 백화점에 쇼핑 외에 다른 기능을 추가해 집객 효과를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다행히 지역 최대 규모의 실내 골프연습장 GDR아카데미는 흥행에 성공했다. 모델하우스는 롯데 계열사간 협력 사례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확실한 이점이 있다. 상인점의 경우 주거 밀집 지역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문화센터를 확장했다.
다만 공간 혁신만으로 시설 노후화, 입점 브랜드 부족 등의 한계를 이겨내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 그보다, 2020년부터 준비 중인 '수성구 알파시티 복합쇼핑몰 건립 사업'이 롯데의 지역 내 입지를 다시 세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롯데는 2026년 6월까지 쇼핑몰 공사를 완료하고 그해 9월 영업을 개시하겠다는 합의 각서를 대구시와 체결했다. 계획대로라면 이 쇼핑몰은 지역 최대 규모의 쇼핑몰이 될 전망이다. 면적은 신세계백화점 대구점보다 3만여㎡ 넓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개점 12주년을 맞는 현대백화점은 불과 몇 년 전부터 대백, 동아, 롯데와 비슷한 이유로 하락세가 시작됐다. 2016년 전국 백화점 가운데 매출이 11번째로 높았던 더현대 대구(옛 현대백화점 대구점). 하지만 대구신세계가 문을 연 다음 해부터 타격이 가시화됐다.
2017년 전국 백화점 매출 순위에 따르면 대구신세계는 개점 1년 만에 10위로 올라섰고 더현대 대구는 14위로 밀려났다. 지난해 기준 더현대 대구의 매출은 5955억원. 수년간 유지하던 매출 6천억원대가 처음 깨진 것으로 알려졌다.
더현대 대구는 'MZ'와 '문화'를 키워드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 어려운 경영 상황에도 아낌없는 투자로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리뉴얼을 진행했고 그 결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점포명도 '더현대 대구'로 변경했다.
지하 2층 영캐주얼관은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노후 MD를 과감히 철수하고 더현대 서울, 현대 판교점에서 인기를 끈 신진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킨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리뉴얼 공개 직후 몇 주간은 주말이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매장을 구경할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밝고 개방적인 쇼핑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옆에 DJ부스를 마련해 퍼포먼스도 진행했는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더현대 대구는 지난해 연말엔 백화점 9층에 마련한 '복합문화예술광장'을 공개했다. 한 층 전체를 고객 휴식과 문화 향유를 위해 내놓은 것인데, 이는 전국 최초다. 실내 디자인은 모두 유명 산업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작품으로 꾸몄고 9층 실외 조각공원 역시 그의 작품으로 채웠다.
5층에 오픈 스튜디오, 6층에 어린이를 위한 체험 공간 '모카 플러스'를 입점시킨 것도 새로운 변화다. 리뉴얼로 더현대 대구의 문화·예술 관련 시설 면적은 기존보다 약 4배 늘었다. 아울러 슬램덩크 팝업, 다나카 팝업 등 트렌드를 반영한 행사도 왕왕 개최하고 있다.
이달 중 공개될 자스민 라운지도 더현대 대구가 앞으로 추구할 방향을 시사한다. 정적인 편안함을 추구했던 기존 라운지와 달리 논 알코올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더한 재충전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지역 유통업계에선 상품 판매뿐 아니라 체험,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롯데와 현대의 이런 시도가 소비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오프라인 소비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이런 노력이 신세계와 대백, 동백에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2023.03.1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