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무시된 사참위 세월호 권고…정부 이행률 8.3%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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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그 날로부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4.16 세월호 참사가 오는 16일로 10주기를 맞는다.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조사위원회를 세 차례(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꾸려 참사의 구조적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려 했다.
그 가운데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022년 9월, 총 3년 6개월의 공식 활동을 종료하면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54건의 권고를 내놓았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 권고까지 합하면 총 80건에 달한다.
사참위는 특별법에 따라 중대 참사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마무리한 최초의 독립기구다. 사참위 권고는 독립조사기구가 도출해낸 '최초의 사회적 교훈'이며, 동시에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가기 위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최소한의 내용'이다.
해당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권고내용을 이행해야 하고, '권고내용의 이행내역'을 매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과연 세월호 10주기를 앞둔 지금, 정부는 사참위의 권고를 얼마나 이행했을까. CBS노컷뉴스는 4.16연대와 함께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된 <사참위 권고 이행 현황>을 분석해봤다.
'사참위 권고' 얼마나 이행됐나? '완전 이행률' 8.3%에 그쳐 사참위 권고 54건은 △4·16 세월호 참사 분야 32건, △재난 및 피해지원 일반, 자료기록분야 22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적인 권고사항은 '대통령의 사과', '불법사찰 및 세월호특조위 조사방해에 대해 추가적인 독립조사 또는 감사 실시', '국정원 자료의 국가기록원 이관', '의료지원금 지급 기간 개정', '가칭 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등이다.
54건의 권고를 크게 12개 분야로 나눠 점검한 결과, '이행'된 것은 단 1개 분야(해양재난 수색구조 체계 개선)에 불과해, 이행률이 8.3%에 그쳤다.
반면 '부분 이행'된 분야는 5개 분야로, 41.7%였다. △재난 피해자의 인권침해 및 혐오 표현 확산 방지책 개선 △선사, 선원 안전 운항 능력 제고 및 책임 강화 △여객선 등 선박 안전관리 체계개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사업의 중단 없는 추진 △사회적 참사 기록 폐기 금지 및 공개, 활용 방안 마련 분야에 진척은 있었지만, 완전히 권고가 이행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미이행'된 분야도 6개 분야로, 절반(50%)에 달했다. △국가 책임인정과 사과 △피해자 사찰 및 조사방해 행위에 대한 추가 조사 및 감사 △피해자 사찰 및 조사방해 방지 제도 개선 △참사 피해자 및 피해 지역 지원 개선 △(가칭)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및 안전기본법 제정 △재난 피해자의 알권리 보장과 정보 제공·소통 방식 개선 분야에 대한 권고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대통령 사과도 없었다…반드시 이행됐어야 했던 5가지 권고는?
미이행된 권고들을 하나씩 들여다본 결과, 첫 번째 권고인 '대통령의 사과'부터 이행되지 않았다.
당시 사참위는 "대통령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사참위 조사를 통해 밝혀진 불법사찰 등 국가폭력 행위는 개별 공무원의 일탈 행위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계획적·대량적·체계적으로 비밀리에 발생한 행위이기에, 국가 차원의 인정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돌아온 정부의 답변은 "2017년 8월 16일 대통령의 사과가 이미 있었음" 뿐. 즉, 추가적인 사과 이행이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이었다. 정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충분한 사과를 마친 것일까.
정부가 지목한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를 대표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에 들어서는 사과 발언이 아예 없다.
4.16연대는 "2017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는 세월호 참사에 따른 희생자 발생 및 진상규명 지연에 대한 포괄적인 사과였다"고 지적하고 "사참위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불법사찰 등 국가폭력 행위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민간인 불법사찰의 책임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방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재발 방지 등을 위해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하며, 관련 정책을 수립해 사회적 변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많이 요구됐던 '진상규명'과 관련한 권고들이 이행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사참위는 권고를 통해 "국정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힐 증거를 보존하는 한편, 불법사찰의 피해자가 입증을 위해 필요할 경우 제공하기 위해 세월호참사 관련 자료 약 68만 건 전체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에 맞서 국정원은 "국정원 생산 세월호 키워드 포함 대다수 자료가 참사와 무관한 통일·외교·안보 분야 민감 정보여서 국가기록원 이관은 불가하다"는 답변만 내놓으며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기록원 자료 이관'이 불가하다는 국정원의 일방적인 답변을 무작정 믿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사참위 조사 당시부터 국정원 문건 중 '세월호' 키워드로 확인되는 문건은 총 68만 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국정원은 사참위에 총 68만 건의 문건 중 12만 건의 문건에 대해서는 보안성 검토의 이유로 목록조차 열람이 불가하다고 통지했다.
또한 국정원은 사참위가 원문 열람을 요청한 첩보·보고서·행정우편 총 2만 1991건의 문건 중 361건의 문건 원문을 비공개했고, 열람을 허가한 2만 1630건의 문건도 주요 내용 및 정보의 출처, 인물, 직책, 기관명 등을 비식별 처리를 한 후 열람하게 한 바 있다.
결국 사참위가 확보한 국정원 자료는 2천여 건에 불과했다. 국정원이 줄곧 사참위의 진상 규명 노력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대목으로, 이를 고려하면 '이관이 불가하다'는 국정원의 해명은 군색해 보인다.
이에 대해 4.16연대는 "추가적인 국정원 자료 공개가 필요하고, 해군 레이더 영상 자료 등 군 관련 자료의 공개도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권고를 꾸준히 이행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사참위는 "해양수산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의 치료가 지속적·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세월호피해지원법 시행령 상 의료지원금 지급 기간을 '부상, 질병의 치유 시까지'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세월호피해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고영인 의원 등 발의)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결국 의료지원금은 현 시행령에 따라 오는 15일까지만 지급된 후 종료될 예정이다.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피해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 및 부상과 그 후유증에 따른 고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금 지원에 대해 기간 제한을 두는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권고 이행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참사 직후부터 자행돼 일부는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기까지 했던 불법사찰 및 세월호특조위 조사방해에 대해 추가적인 독립조사 또는 감사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사참위는 "국정원장, 경찰청장, 국방부장관, 국무조정실장, 해양수상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기획재정부장관, 법제처장, 인사혁신처장은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 및 직무 범위를 넘어선 독립 조사기구에 대한 조사 활동 방해 행위가 면책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 불법사찰 및 세월호특조위 조사방해에 대해 추가적인 독립조사 또는 감사 실시"를 권고했다.
정부기관들은 각 기관의 TF에서 행한 조사 및 감찰 결과, 사참위 조사, 검찰 특수단의 수사에서 밝혀지거나 기소 혹은 무혐의 처분된 부분을 앞세워 권고가 이미 이행됐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해당 권고가 이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경찰의 경우 "세월호참사 당시 작성된 정보보고서는 모두 파기돼, 추가조사를 통해 사참위 조사 결과 이상의 내용을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라고 답변했다. 즉 당시 불법사찰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니 더 조사하지 않겠다고 손을 뗀 셈이다.
국정원은 "수년에 걸친 검찰 수사와 사참위 조사를 통해 국정원의 불법행위 사실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며 "이에 따라 추가 수사감사 및 고발 징계 등 조치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며 추가 조사나 감사가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4.16연대는 "사참위 조사의 한계에 따라 확인되지 못한 국정원 등의 사찰 및 조사방해 행위가 존재한다"며 "추가적인 독립조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하고, 불법행위가 드러난 경우 고발 및 징계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중대재난조사위원회가 설립되지 않은 것도 대표적인 문제다. 사참위는 "독립적인 상설 재난원인조사기구로서 개선 권고 및 권고이행 여부 점검 기능, 피해자와의 소통 기능 등을 확보한 (가칭)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를 따로 두는 것은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해당 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중대재난조사위원회가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현행 재난조사시스템은 부처 자체 조사에만 기대고 있어 조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고, 따라서 근본적 원인 규명과 제도개선 역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조사기구 대부분이 비상설로 운영되니 재난 조사 이후 곧바로 기구가 폐쇄돼 조사관에 대한 교육·훈련이나 조사 전문성을 축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4.16연대는 "강력한 조사권한, 개선권고 및 권고이행점검 기능, 피해자와의 소통 기능 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처럼 5가지 미이행 권고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4.16연대는 △재난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정보 제공·소통 방식을 개선할 것 △여객선 등 선박 안전관리 체계 개선 △선사·선원의 안전 운항 능력을 높이고 책임을 강화할 것 등을 촉구했다.
"22대 국회, 권고 완전 이행 위해 책무 다 해야"
더 나아가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사회는 이러한 미완의 권고들이야말로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새로 출범한 22대 국회가 풀어나가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짚었다.
4.16연대 이태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 2월 국회는 사회적참사규명법을 재정해 권고내용의 이행점검 주체를 국회에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구체화한 바 있다"며 "새로 시작될 22대 국회는 정부의 권고 이행 여부 점검과 더불어 자신에게 부과된 이행입법의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참위 사무처장을 지냈던 오지원 변호사 또한 "재난 역사상 최초의 독립조사위원회가, 최초로 피해자들의 관점을 조사해서 낸 권고안이라는 의미가 있는 만큼, 반드시 미이행 권고들이 이행되어야 한다"면서 "특히 독립 조사기구인 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이 가장 시급하다"고 밝혔다.
2024.04.1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