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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레저

    ''4가지 키워드''로 걷는 남산

    [서울의 재발견 ①]

    지금껏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이들에게 ''''주말 여행''''이라면 지방으로 ''''탈출 행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서울로 여행''''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미처 몰랐던 서울, 중세와 근대와 현대가 함께 공존하는 유구한 역사도시 서울, 장소마다 세월이 쌓여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들을 품고 있는 서울, 그리고 도심을 둘러싼 18km의 조선시대 성곽과 함께, 도심을 감싸 안은 산과 계곡이 있는 서울 사대문 안으로, 도보 여행, 답사,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압축적 개발을 겪은 서울의 옛 도심을 역사도시, 생태도시로 복구하고 가꿔 향유하려는 기운들이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보면,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해 본 젊은이들이 서울 사대문 안에서 도심의 낭만과 운치를 발견하고는 그 정보를 정리해낸 책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서울 도심의 북촌과 서촌이 인기를 끌고, 강남의 압구정동보다 강북 도심의 삼청동을 요즘 인터넷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고향으로 자란 이들뿐 아니라 타향살이하는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이들까지, 서울에서 새로운 낭만과 추억을 만들고자 서울의 옛 도심, 서울 사대문안의 도성으로서의 서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여가로서의 여행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 삶이 가장 치열하고 팍팍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내가 사는 방식을 돌아보는 행위이고, 나아가 다르게 사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이 서울 도심 여행을 함께 시작해보자. 고려 500년 역사에서 400년간 고려 제2의 수도(남경)였던 서울 사대문 안, 그 남경에 천도해서 개국한 조선의 500년 수도(한성), 그리고 근현대 100년의 수도(경성, 서울)인 서울 사대문 안 도성이었던 도심, ''''1000년 고도'''' 서울 도심을 함께 생각하고 즐기며 걸어보자.

    나도 몰랐던 서울의 재발견, 오늘은 남산에서 시작한다. 오늘 함께 할 남산 걷기 여행, 키워드는 4가지다.

    ◇ 키워드 ① ''''벚꽃 그리고 소나무''''

    일단 지금 남산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은 대부분 벚꽃을 떠올릴 것이다. 남산 벚꽃축제가 4월 13일 오전 10시 벚꽃길 걷기대회를 시작으로 한주간 진행된다. 하지만 긴 꽃샘추위 때문에, 남산 벚꽃의 피크는 벚꽃축제기간의 막바지인 20일경이 될 테니, 되도록 20일 전후에 찾아가시길 권한다.

    일단, 남산 벚꽃길은 ''''특별하게 멋지다''''. 그것은 남산 벚꽃길이 다른 곳의 벚꽃길과는 다른 매력을 몇가지 갖고 있기 때문인데, 첫째 골라걷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먼저 남산 벚꽃 산책로를 걷기 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조금 경사가 있더라도, 완벽한 벚꽃 터널의 맛을 즐기며 걸을 것이냐, 아니면 꼭 벚꽃이 터널을 이루진 않아도 좋으니 적당히 벚꽃이 펼쳐지면서 경사 없이 편안한 산책로를 걸을 것이냐.

    전자는 남측 순환로 벚꽃길이다. 남산도서관 앞에서 진입해 N서울타워까지 오르는 1.2km의 조금 경사가 있는 길이다. 한쪽으로 버스가 다니는 길이 있고 오른편에 푹신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남측 순환로 벚꽃길은 북측 순환로에 비해 좁은 길 넓이 덕분에, 큰 벚꽃나무들이 아름다운 벚꽃 터널을 이룬다. 이 벚꽃 터널이 거의 남산 정상 근처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천천히 걸어오르면 30분. 개인적으로 이 길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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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자는 북측 순환로 벚꽃길이다. 국립극장 옆으로 진입해서 옛 백범광장 남산성곽공원 부근까지 3km에 이르는 큰 경사 없는 산책로다. 길이 넓고 차도 안 다니는데다 길 양 옆에 벚꽃나무뿐 아니라 다양한 꽃과 나무들도 심겨 있어서 호젓하게 산책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걸어서 40~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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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꼭 골라 걸어야 하느냐, 둘 다 걷고 싶다 하시면 물론 방법이 있다. 먼저 남산도서관 앞에서 남측 순환로로 걷기 시작해서 N타워 밑의 버스 정류장까지 벚꽃 터널길을 20여분간 즐기며 걸어 오른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면 왼쪽에 있는 N터널 언덕빼기로 올라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100m 정도 걸어서 북측 순환로와 연결되는 왼편 오솔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 길도 조용한 행복감을 선사하는 예쁜 길이다. 너무 헤매며 찾을 필요 없다. N타워 밑 버스들 서 있는 곳에서 버스 기사분이나 매점 직원한테 북측 순환로로 내려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된다. 이 행복한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북측 순환로와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거기서 북측 순환로로 진입해서 국립극장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된다. 경사로를 따라 벚꽃터널을 즐긴 뒤에,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 넓은 벚꽃 산책로를 걷는 이 코스 소요 시간은 1시간 정도로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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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벚꽃길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그저 벚꽃만 늘어서 있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도심의 탁 트인 전경이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전경이 벚꽃을 비치는 가로등 불빛과 도심의 해질녘 야경이 어우러진 풍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남산 벚꽃길 산책 시간을 오후 5시로 제안하고 싶다. 늦은 오후 노란 볕을 받고 걷다가 이내 노을과 만난 뒤 가로등 조명이 비치는 벚꽃에 도심의 야경까지 펼쳐지니 그 광경은 꽤 훌륭하다. 외국 관갱객들이 남산을 관광 인기 코스 1위로 꼽는 이유는, 그들 대도시 수도의 한 가운데, 수도 어느 곳에서든 30분 거리 안에 도착해서 이렇게 쉽게 밤이든 새벽이든 안전하고 편안하게 산책하듯 푹신한 산책로를 따라 오를 수 있는 산, 265m 높이의 공짜 도심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심 야경을 볼라치면 고층 건물 식당을 예약하거나 건물 옥상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든가 스카이라운지에서 돈 내고 한잔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부러워하는 혜택을 한없이 향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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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보니, 남산 하면 벚꽃나무가 먼저 떠오르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남산하면, 정말 먼저 떠오르는 나무가 뭔가. 그렇다. 남산 뒤에 저 ''''소나무''''다.

    남산 벚꽃의 유래는 남산의 아픈 역사와 맞물려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남산을 ''''왜장 터'''' 혹은 ''''왜성대''''라 부르면서 주둔지로 삼았다. 이곳을 자신들의 성역처럼 여겨서 100여년전에 일제 침략이 본격화될 때도 이곳 남산은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의 거점이자 일본인의 거주지였다. 1897년 일본인들이 남산 일부를 왜성대공원(지금 숭의여자대학 터)이라 이름 짓고, 또 1909년에는 한양공원(남산 분수대 부근과 케이블카 승강장 150미터 남측 지점)을 조성해서 산길을 닦아 일본 벚꽃나무를 대거 옮겨 심었다. 이 나무들이 번져서 지금 남산의 벚꽃길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원래 남산을 지키고 있던 소나무가 반 이상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남산을 대표하는 소나무는 여전히 남산의 터주대감. 남산의 커다란 소나무 군락지에 시민들의 삼림욕 산책을 위한 탐방로가 나 있다. 이 탐방로 일대에는 남산 전체의 소나무 2만7862그루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만2801그루(46%)가 자라고 있다.

    탐방로를 이용하려면 서울의 공원 홈페이지(parks.seoul.go.kr)나 남산공원 관리사업소로 전화(02-753-7060)해 미리 신청해야 하는데, 벚꽃도 즐기시고 남산의 소나무숲 산책로도 함께 거니시길 추천한다.

    ◇ 키워드 ② ''''일본의 식민 통치와 민족의 항일''''

    조선시대 이래로 민족의 아픔을 먼저 알고 먼저 울었던 곳이 바로 남산이다. 임진왜란 때 남산은 왜군들의 주둔지로 고통을 겪었고, 19세기 말부터는 일제 통치 기구의 집결지이자 일본인 거주지로 신음했다.

    일본 통감부와 경복궁 안으로 이전하기 전까지의 조선총독부 그리고 국권을 일본에 넘긴 치욕의 장소 일본 통감관저(지금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리라초등학교 터) 그리고 경성신사(지금 숭의여자대학 터),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 박문사(지금 신라호텔 터) 등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그 장소가 지금 남산 1호 터널과 남산 소파길이 만나고 펼쳐지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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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신라호텔 자리에 세워졌던 박문사는 사찰 정문으로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뽑아서 가져다 세워놓고 경춘문으로 이름을 붙였다. 해방 후에 이 흥화문은 박문사 자리에 들어선 신라호텔 영빈관 정문으로 쓰이다가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신라호텔 안에는 정문 모양과 진입로 그리고 계단 등 박문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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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라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아동 보육시설인 남산원에 가면, 남산에서 유일하게 일본 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이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노기 마레스케의 사당인 노기신사. 지금 남산원에서는 그 신사의 석재물들을 마당의 테이블과 의자용으로 ''''거꾸로 뒤집어 놓고'''' 사용하고 있다. 재밌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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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이 바로 조선신궁이다. 남산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던 자리, 안중근 기념관과 백범 광장이 있는 자리가 바로 조선신궁 터다. 조선신궁 터에서 땅 밑까지 지금도 하얗고 긴 계단이 차곡차곡 빼곡이 쌓여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드라마 배경 ''''삼순이 계단''''이라고 부르며 많이들 찾는 그 계단이다. 바로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던 그때 그 당시의 계단 모습, 즉 남산을 향해 직선으로 질주하는 계단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다. 일본의 각종 신사 중 가장 격이 높은 것이 신궁인데, 일본에도 얼마 없는 신궁을 조선의 수도 한복판 남산에 세웠다. 지금도 일제 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신 어르신들은 전차를 타고 이 지역을 지나갈 때마다 안내자의 구령에 따라 그곳을 향해 묵념을 하던 기억을 갖고 계실 것이다. 조선신궁이 들어서면서, 조선시대 개국 이래로 목멱대왕이라는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산천제의 장소 ''''국사당''''이 지금의 인왕산으로 옮겨졌다. 조선신궁보다 위에 조선의 국사당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사당이 옮겨진 그 자리가 지금 팔각정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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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는 것은, 해방 후 조선신궁 터에 무엇이 들어섰는가 하는 점이다. 먼저 남산 식물원과 동물원이다. 이것은, 우리의 왕궁인 창경궁을 일제가 창경원으로 위상을 격하시키고 공원화면서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던 것에 대한 우리 나름의 동일한 ''''보복 조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 즉 을미사변 때 피살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쌓은 제단인 장충단을 일본이 벚꽃 수천 그루의 어린이 놀이터 즉 ''''장충단 공원''''으로 만들었던 것에 대한 ''''되갚음''''이기도 하다. 한편, 남산 식물원에는 열대식물들이 주종을 이뤘었는데, 월남전 당시 파월 장병들이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열대 지방의 이국적인 식물을 볼 수 없었던 고국의 아이들을 위해 낯선 이국땅의 식물을 보내왔고, 그 식물들이 남산 식물원을 채운 것이 그 배경이었다.

    조선신궁 터에 들어선 또 다른 설치물은 안중근 동상과 안중근 기념관. 이것은 달리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안중근 기념관이 얼마전 새로 리모델링 개관했는데 건축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전시 내용도 비교적 입체적으로 구성해놓아서 가 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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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백범 동상과 이시영 동상이 있는 백범 광장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고 준비하던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과 광장이 이곳에 항일의 상징으로 들어선 것 역시 충분히 자연스럽다.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이시영 선생 동상도 그 맥락이 충분히 자연스럽다. 당시 조선의 손꼽는 부자 집안이 일가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 이회영, 이시영 등 여섯 형제 일가는 유명하다.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 등 핵심 간부로서 가난과 시련 속에서 임시정부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6형제 중이 5형제가 모두 죽고 자신만 해방 후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이승만 정권의 사회부패상과 국정혼란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내고 정부를 스스로 떠났던 인물이 이시영 선생이다.

    그런데 백범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김구와 이시영 선생 모두, 이승만 전 대통령을 독립운동 초기에는 동지 관계였으나 임정 후반기 그리고 해방 후에는 갈등을 빚었다. 재밌는 것은, 지금 김구와 이시영 선생 동상이 있던 자리가 1956년 광복절을 기념해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건립된 자리였다는 점.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시련 속에 지키고 진정성 있는 독립운동을 벌여온 김구와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들어섰다. 이것이 역사의 평가다. 이 백범광장이 지난해 남산성곽공원으로 꾸며져서 복원된 성곽과 함께 개방됐다. 조선신궁 터를 걸으며 안중근, 김구, 이시영 동상을 보면서 해진 후에 조명이 비치는 성곽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는 길, 꼭 산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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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신궁에서 힐튼호텔쪽이 아닌 퇴계로쪽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곳이 충무로다. 지금의 충무로를 중심으로 남산 밑에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형성됐다. 해방 후에 ''''충무로''''라는 길 이름이 그곳에 붙은 이유도 일본인들을 상징하는 거리를 일본을 응징했던 역사적 인물 충무공 이순신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 청나라가 임오군란 이후 군대를 주둔시키고 중국인들의 거주지를 형성시켰던 거리에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역사적 인물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따서 을지로라고 지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길 이름을 이야기하니, 남산의 남쪽 드라이브 코스인 소월길과 북쪽 도로인 소파길도 잠깐 짚어보자. 소월길은 시인 김소월의 호인 소월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김소월이 남산학교를 나온 것을 기념해서 남산에 산유화 시가 담긴 김소월 시비가 세워졌다. 그 때문에 소월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소파길은 소파 방정환의 호를 딴 이름이다. 지금 남산도서관 옆에 둥근 지붕을 한 하얀 고층 건물,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이 있다. 이 건물이 원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육영수 여사의 업적으로도 홍보됐던 남산 어린이회관 건물로, 아마 기억하는 분들 많으실 거다. 이게 나중에 국립중앙도서관이 됐다가 지금은 좀 낯선 기관 건물이 돼 있는데, 당시 어린이회관 건물이 세워지면서 이쪽 길 이름도 소파 방정환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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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하면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남산 소파길에 늘어선 남산 왕 돈가스다. 얇고 넓게 고기를 뛰겨서 적당한 가격에 배불릴 수 있는 인기 메뉴다. 돈가스는 일본말로, 돈가스도 일본 요리 이름이다. 일본에 소개된 포크커틀렛의 커틀렛이라는 단어가 카츠레츠, 줄여서 카츠, 거기에 돼지고기 돈을 붙여서 돈가스가 된 것. 남산이 지닌 역사적 맥락이 이렇게 지금까지도 곳곳의 장소에 지금도 우리에게 여러 이야기들을 건네고 있다. 남산을 걸으시면서, 바로 두 번째 키워드 ''''일본의 식민 통치와 민족의 항일''''의 역사들을 만나시길 바란다.

    ◇ 키워드 ③ ''''군부 독재 그리고 인권과 평화''''

    세 번째 키워드는 ''''군부 독재 그리고 인권과 평화''''다. 식민 통치 권력의 거점으로 민족의 아픔을 몸소 겪었던 남산은 해방 후에 그 터를 다시 고스란히 군사독재정권의 정권 안보를 위한 인권 탄압의 기관인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 넘겨줬다. 조선시대 이래로 민족의 아픔을 먼저 알고 먼저 울고 먼저 신음했던 곳이 바로 남산이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바로 이런 맥락이다.

    의문사를 당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이 모두 남산에서의 정치공작이었다. 당시 조작간첩 사건을 수사하던 안기부 제5별관은 서울시청 별관으로 바뀌었고, 지금의 서울유스호스텔은 중정과 안기부 본관으로 지하에서 혹독한 고문이 이뤄졌던 곳이다. 지금 교통방송, 서울종합방재센터 등도 모두 당시 안기부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 기관들의 거점이었던 이곳에 이런 기관들이 자리잡은 것은, 일제 기관들의 부지로서 국유지로 개발됐던 터라 그 자리에 손쉽게 독재 권력이 음지의 권력 기관들을 배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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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서 식민통치와 독재탄압의 터가 됐던 남산의 아픈 기억의 흔적을 지우지 말고 복구하고 복원하고 남겨서 ''''인권과 평화의 숲''''으로 조성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아시아인권평화센터'''' 또는 ''''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고난과 오욕을 품어 이겨내고 인권과 평화를 싹틔운 곳으로 기념하자는 것이다.

    남산이 품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은 이뿐만이 아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 장교 경력 그리고 남로당 전력을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친일파와 좌파 이력을 벗기 위한 이데올로기 작업에 돌입한다. 그 두가지가 바로 ''''반공주의''''과 ''''민족전통문화''''. 이것을 각각 대표하는 남산의 건축물이 ''''자유센터''''와 ''''국립극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 좌파 전력으로 인한 미국의 불신을 해소하고자 ''''반공주의''''의 기치를 들고 아시아반공연맹의 ''''자유센터''''를 서울에 과시적으로 세웠다. 설계 건축을 담당한 이는 김수근. 지금 남산 반얀트리호텔의 전신인 타워호텔이 자유센터의 숙박동으로 지어졌고, 지금의 자유센터는 북을 향해 뱃머리를 쳐든 지붕머리와 도열한 군화를 연상시키는 북진통일의 이데올로기 건축으로 건축 당시부터 관심을 모은 건축이다.

    또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친일 경력을 의식해서 ''''민족전통문화'''' 이데올로기의 깃발을 들고 자유센터 바로 맞은 편에 만든 것이 지금 국립극장이 된 남산 민족문화센터와 국악인 양성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뿐 아니라 61년 쿠데타 직후 숭례문의 전면 보수와 서울성곽 즉 서울한양도성의 복구 등 주요 문화재 관련 보수 작업을 전개하는데, 이것 역시 박정희 정권의 ''''민족전통문화'''' 이데올로기가 그 배경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가지 이데올로기 상징물인 자유센터와 국립극장이 남산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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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1 사태는 우리 서울 도시 구조 변화에 있어서 9.11 사태와 비견할 만한 사건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21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면서 북의 위협을 의식한 서울 공간 재편을 시도했다. 수도 이전 시도와 강남 개발, 북악스카이웨이 건설과 남산 요새화 정책들이 이때 본격화됐고, 남산 요새화 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남산 1호 터널과 2호 터널이다. 이 두 터널은 유사시 서울 시민 30~4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로 설치된 것이다. 지금은 서울의 중추적인 교통망이 됐지만, 그 시초는 안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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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남산은 깊은 곳까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품고 있다. 두 번째 키워드와 세 번째 키워드를 함께 묶어서 남산 북측 순환로와 소파길 주변을 사색하며 산책해보시면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 키워드 ④ ''''도성''''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성곽 즉 ''''도성''''이다.

    서울 사대문 안 도심을 빙 둘러싼 네 개의 산을 따라 서 있는 이 도성이 그간 주목받지 못하다가 청와대 근처의 북악산과 인왕산 길이 개방되고 도성 길이 정비되면서 여러 둘레길 걷기 열풍과 맞물려서 요즘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가 최근 이뤄졌고,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오르면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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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성곽의 명칭은 서울한양도성.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성곽 중 세계 최장 기간 도성 역할 수행했고, 또 남아있는 수도의 도성으로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서울 한복판 18km 길이의 성곽이다. 서울 사대문안 옛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북쪽의 북악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을 따라 성곽을 쌓고, 각각의 산 밑에 대문을 내서 4대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남산에서도 성곽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다만, 남산의 성곽 산책로는, 다른 세 개의 산과 달리 성곽길 자체를 끊임없이 따라가도록 이어져 있지는 않고 접근이 어려운 곳은 산책로가 단절돼서 끊긴 채 이어진다. 하지만 나무 데크 계단과 돌 계단들을 따라 꽤 긴 구간이 도성 산책로를 곁에 끼고 있다. 남산에 오셨으면 꼭 한번 걸어보시길 권한다. 도성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다음 회에 따로 또 다루도록 하고, 일단 남산 성곽길 산책로를 소개해드린다. [BestNocut_R]

    일단 남산의 성곽을 보고 따라 걸으려면, 남산도서관에서 남측 순환로로 오르지 말고, 남측순환로 옆에 N타워로 올라가는 계단길로 올라가야 한다. 그 계단 길을 따라 걸으면 남산의 성곽을 끼고 아름다운 전경을 따라 남산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반대로 국립극장 쪽에서 올라올 경우에는 남측 순환로로 100미터 정도 걷기 시작하면 오른쪽에 성벽을 끼고 오르는나무 데크 계단길이 있으니 그걸 타고 걸으면 된다. 밤에는 성곽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도 멋지다. 다만 좀 계단이 가파르다는 것은 유의할 점. 하지만 한숨을 돌리려고 잠시 쉴 때 펼쳐지는 도심의 전경은 성곽의 운치와 함께 엔돌핀을 생성시킨다. 그리고 남산 성곽길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길이 바로 앞서 언급한 백범 광장이 있는 남산성곽공원이다. 지난해 시민에게 개방된 이 성곽공원의 성곽 조명 야경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도심 야경의 표지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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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렇게 남산 여행을 네 가지 키워드로 짚어봤다. 꼭 한번 걸으시면서 남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껴보시길!

    ps. 참고로, 재밌는 팁 하나. 남산을 낙산쪽에서 바라보면, 커다란 누에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남산의 서쪽을 누에 머리를 닮은 봉우리, 즉 잠두봉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누에 양잠이 중요한 소득원이었는데, 풍수지리에 따라 남산이 동남쪽을 향해 있는 곳과 서남쪽을 향해 있는 곳에 각각 커다란 뽕나무 밭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잠실과 잠원이다. 지금 우리들이 쓰는 수많은 지명과 명칭 속에 이런 지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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