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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뜻밖의 것들로 가득한 날들에 부쳐

    문학편지

     

    착각이 아니냐고요. 계속 물속에 있던 사람인데, 원래 묻어 있던 물인지 틈에서 새어 나온 물인지를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것도 어둠 속에서. 저도 처음에는 상처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라면 그 정도 크기와 깊이에 당연히 피가 흐르고 더구나 물 묻은 피가 아래로 번졌겠지요. 생긴 지 오래된 상처라면 그 흔적이 사람의 피부에 온전히 자리를 잡기 때문에 그렇게 뚜껑을 열었다 닫듯이, 입술 벌어지듯이 움직이지 않는다고요. 아시겠어요? 거기에 달빛을 받은 그의 목은 사람의 살결이라기보다는 섬세한 그물무늬를 가진 비늘처럼 빛나 보였다는 사실도 보탤게요. 그가 물속으로 완전히 몸을 담갔을 때, 이제 꼬리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한 번 떠오르겠다고 기대했어요. 인어란 사람이 보는 데서는 변신하지 않는 법이니까, 물에 잠긴 다음 모습을 바꾸어 단 한 번 꼬리를 솟구치리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물에 들어간 그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어요. 구급차가 결국 건너편으로 올 때까지, 강물 위에 부걱거리는 수많은 거품 가운데 무엇이 그가 뿜어내는 공기 방울인지 알 수 없었어요.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당신을 건져준 사람이 있다는데 어디 갔느냐고 구급대원들이 물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수색해달라고 말했어요. 그건 최소한 사람의 도리와 일반사회의 상식을 갖춰 말한 거였지만, 사실은 그러면서도 그가 벌써 어디론가 무사히 헤엄쳐서 사라졌으리라고 믿었어요. 그대로 물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다른 물고기들과 한데 섞여 또 다른 강줄기를 따라갔을 거라고 말이에요. 그 부옇고 탁한 강물이나마 자기의 고향이거나 유일한 집이어서 거기 몸을 맡길 수밖에 없을 거라고요. 결국 부근에서는 시체가 나오지 않았지요? ― 「아가미」 중에서 (『아가미』)

    어쩌다 독서나 음악 감상을 하고 난 직후에 틀어진 목화솜처럼 감수성이 하얗게 부풀어 올라 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들을 참 쉽게 합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일상생활에서 보면 어떤가요. 자신이 보거나 듣거나 만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 가차 없이 ''그건 말도 안 돼'' 또는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버리곤 합니다.

    저는 어려서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꼭 한 번쯤 ''이상한 것''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고공에서 흔들리거나 떨어지는 놀이기구를 못 탈 만큼 심약한 편인데도, 세트장처럼 만들어진 흉가 체험 코스 같은 것 말고 진짜 귀신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 곳곳 각종 기이한 현상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36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런 비일상적인 일은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가십 기사일 뿐, 저에게는 한 번도 일어나 주지 않았지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어요, 왜 나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즉물적이며 감각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공기나 먼지로 잘 알고 있는데 어째서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만은 실제로 보고 만져야만 알겠다는 걸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고요. 비록 저 자신에게는 뜻밖의 낯선 일이 일어난 적 없지만, 분명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일상적인 일일지도 모르며, 그 낯섦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한없이 깊고 따뜻할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구병모 올림

    구병모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집필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데뷔작이자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 소설=성장소설''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원문은 한국도서관협회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 (http://letter.for-munhak.or.kr)에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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