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의 꽃'이어야 할 팀플이 오히려 상아탑에서 '공공의 적'으로 몰리고 있다. 상당수 대학생들은 교과수업의 파행과 교우관계의 파탄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팀플을 꼽고 있다. CBS 노컷뉴스는 모두 4회에 걸쳐 파행 운영되는 대학 팀플의 실태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캠퍼스 속 지뢰, 팀플은 미친 짓이다?
②캠퍼스의 프리라이더…"팀플은 참여 안해도 OK!"
③상아탑의 문제아로 전락한 '팀플'…대학당국은 '수수방관'
④"우린 팀플이 좋아요!"…캠퍼스에 부는 새 바람"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우리나라 대학가에서는 '팀플(팀 프로젝트 혹은 조별 공동과제)'이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며 대학생들의 스트레스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모습은 어떨까?
호주에서 대학교를 다닌 유학생 J씨는 “유학시절 팀플을 통해 배운 게 많다”며 “프리라이더같은 팀플의 문제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J씨는 학기 초마다 교수에게 장기 프로젝트 과제를 받았다. 팀원 선정부터 과제제출 준비를 마치기까지 두 달 이상 걸렸다. J씨는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동안 주제가 방대하고 어려워 고생하긴 했어도, 이것 때문에 관계가 틀어진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의 신입사원인 그는 “대학시절 팀플활동을 통해 의견조율이나 발표, 기획 등 팀단위로 움직이는 회사생활에 노하우가 생겼다. 남들의 말은 귀담아 듣고 내 의견은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자세가 몸에 익은 것이다”고 전했다.
J씨가 꼽은 한국대학과 외국대학의 가장 큰 차이는 의사소통 방식. J씨는 열심히 준비해 간 자료가 팀원들에게 ‘필요 없는 내용이다’는 평을 듣자 머리가 하얘졌다. ‘솔직한’ 반응이 어색한 탓이었다.
하지만 이에 익숙해지자 팀플에도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할 말을 그 자리에서 하고 나니 불만이 남을 수가 없었다”는 게 J씨의 말이다. 그는 “각 팀과 교수 사이에도 피드백이 활발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잘하는 부분이 팀원들에게 전달되고, 내가 부족했던 부분도 보완해 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팀 프로젝트 방식의 수업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팀플을 도입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로 이제 겨우 10여년이 지난 셈이다.
총신대학교 교육학과 정한호 교수는 “팀플의 문제는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이를 팀 성과로 이어갈 교육방법과 학습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 "처음에는 대충하려 했는데…하다 보니 욕심 생겨"“저도 처음에는 대충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도 생기고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서울여자대학교 3학년 김가희씨는 지난 학기 프로젝트 팀원들과 함께 서약서와 카메라를 들고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인터넷상 잊혀질 권리’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도를 아십니까’로 착각한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며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100명이 넘는 시민들에게 서약서를 받고 사진도 찍었다. 찍은 사진은 포스터로 만들었다. 공익광고 공모전에도 내볼 생각이다.
김씨가 프로젝트 팀을 꾸린 곳은 서울여대의 ‘바롬인성교육3’. 서울여대생이라면 누구나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수강신청부터 관심 주제별로 학생들을 모은 다음, 그 안에서 세부주제를 다시 선정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후 팀원들끼리 스스로 모든 활동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수업을 들은 3학년 박은혜씨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팀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도 수시로 교수 피드백 시간이 있다”고 전했다.
학교측에서는 회의방법, 프로젝트 진행에 필요한 교육을 마련해 학생들이 팀 프로젝트를 하는 방법 자체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신입생 2000명을 상대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도 ‘인간관계에 도움이 됐다’, ‘친구들과 협력하는 법을 배웠다’는 응답이 각각 5점 만점에 4.5점, 4.3점으로 집계됐다. 박씨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힘들어 해도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대부분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서울여대 제공)
◈ 팀플의 문제는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바롬인성교육’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은 학생·교수·학교당국 간 소통창구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교수자가 학습자를, 학교당국이 교육 전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수업평가방안을 활용, 매번 개선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서울여대 바롬인성교육원 박범실 부장은 “학생들에게 경쟁이 아닌 화합을 가르친다는 철학으로 대학 구성원 모두가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팀플의 문제는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한다. 대학사회에 만연한 취업과 학점쌓기 경쟁 하에서 대학 주체들 모두 팀플의 문제점을 외면하기 일쑤다. 학생들조차 ‘이번 수업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소극적인 대처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피하고 있다.
교수들이 평가방식·수업목표 등을 학생들과 분명하게 공유하고, 반대로 학생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 또한 교수와 공유되어야 팀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정한호 교수는 “학교당국도 지원 제도를 확립하고 관심을 쏟아야 장기적으로 팀플 자체가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입장에서도 팀 프로젝트 수업을 잘 운영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도 마당한 프로그램이 없는 등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좋은 강의평가를 받고 있는 교수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일정수준 이상으로 팀플에 대한 교수들의 지도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 팀플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할 때
정 교수가 유학 시절 겪은 일화다. 정 교수는 자신의 담당교수와 함께 샌드위치 가게에 갔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교수가 그에게 “이 가게 점원들 사이에 팀플레이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냐”고 질문했다.
손님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점원들은 자기가 맡은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도우며 일처리를 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정 교수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담당교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목적을 점원들이 분명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RELNEWS:right}
한국의 대학공동체도 팀플의 목적에 대해 냉정하게 되짚어 봐야 할 때다. 팀플은 원래 혼자서는 해내기 힘든 교육성과를 만들어내고, 타인과의 협업과정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들어왔다. 팀플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교수·학교당국의 ‘소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