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건설업자 윤중천(52) 씨의 성접대 등 불법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결국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고위층의 부적절한 스캔들로 불리며 사회적인 공분을 산 이번 사건이 중대한 기로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경찰이 김 전 차관에게 적용한 혐의를 보면 한 가지 결정적 의문이 제기된다.
◈ 경찰, 김 전 차관에 특수강간 혐의 적용…김 전 차관 측은 혐의 부인
경찰은 김 전 차관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4조 위반, 즉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강간 혐의는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지닌 채 또는 2명 이상이 합동해 강간의 죄를 범했을 때’ 적용된다.
하지만 경찰과 김 전 차관 측의 설명을 종합할 때 흉기 또는 위험한 물건의 존재는 전혀 드러난 바 없다. 따라서 김 전 차관의 혐의는 2명 이상이 함께 성폭행을 한 경우로 압축된다.
실제로 경찰은 검찰에 보낸 체포영장 신청 관련 서류에 “윤중천 씨가 자신의 별장에서 한 여성이 있는 방에 김 전 차관을 들여보내 강제로 성폭행하도록 했다”고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김 전 차관 측은 경찰청에 보낸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혐의를 부인하면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직접 조사 없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각하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관 측은 구체적으로 "김 전 차관이 윤 씨가 최음제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윤 씨와 합동범으로 처벌을 받을 정도의 실행행위를 분담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성관계 사실 자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윤 씨와 공모해 피해자를 성폭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석 달 수사했지만 뇌물수수 혐의는 밝혀내지 못해
당초 경찰은 김 전 차관이 성접대 등 불법로비를 받고 그 대가로 윤 씨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있는지 등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성접대’나 금품 등의 대가를 받고 직무와 관련된 청탁을 들어줘야만 뇌물 혹은 알선수뢰 혐의 등으로 처벌이 가능해서다.
이를 위해 경찰은 윤 씨가 연루된 고소사건 등과 관련해 수사기관에서 전화를 건 내역을 확인하고 윤 씨 주변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계좌추적을 벌였다.
하지만 석 달에 걸친 수사에도 경찰은 뇌물이 오간 정황을 잡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났다면 체포영장을 신청할 때 적용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찰이 끝까지 김 전 차관에 대한 ‘망신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 초기부터 성접대는 뇌물수수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경찰이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더니 자극적인 혐의를 끌어다 붙였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경찰은 왜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했나
물론 경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김 전 차관을 사법처리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사정기관의 차관을 물러나게 한 사건인 만큼 수사 실패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 새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청와대와의 갈등설까지 제기된 상황. 게다가 최근 국가정보원의 대선ㆍ정치 개입사건 수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경찰의 불공정한 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따갑다.
결국 김 전 차관이 무혐의로 밝혀질 경우 경찰은 그야말로 검찰과 청와대, 국민들에 모두 외면받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릴 수 있다.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갔다. 검찰이 경찰의 신청을 받아들이고 이어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다면, 경찰은 김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해 수사를 이어나갈 수 있다.{RELNEWS:right}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된다.
반대로 체포영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찰의 이번 수사는 별다른 성과 없이 사실상 마무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낙제에 가까운 초라한 수사 성적표는 국가정보원 사건 축소·은폐 논란이나 수사권 독립 문제 등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