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 장충동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 동상 제막식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6월 24일 (월) 오후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시대정신측 토론자) vs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정관용> 제가 두 분께 전반부에 10분씩 주도권 토론을 드렸던 것은 아마 백년전쟁과 생명의 길에 나온 11가지 거짓 내지는 하나의 왜곡이라고 주장하신 생명의 길에서 거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내용이 다르게 주장을 하시기 때문에 그 문제를 놓고 다투시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해서 문제는 사실관계를 따져야 되는 대목이고 이게 명예훼손 소송까지 가 있다는 것은 아마 법정에서도 사실관계를 가지고 또 아마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이런 사안이라, 여기에서 관점을 교환하는 토론으로는 조금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주제라 두 분이 그런 주도권을 갖고 한번 사실관계를 따져보시라, 이렇게 기회를 드렸던 건데 두 분 다 사실관계를 안 따지고 다른 얘기들을 주로 하셨어요.
◆ 박성현> 하나만 따져도 옳고 그름이 부족해요.
◇ 정관용> 잠깐만요. 다른 얘기를 하셨는데 두 분이 20분 동안 너무 중복해서 서로 같이 말씀하신 게 많아서 청취자 분들이 지금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 박한용>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두 분 다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제가 두 분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청취자들한테 알려드리는 차원에서 조금 요약삼아 질문하겠습니다. 박성현 주필께서 백년전쟁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시는 것은 특히 중국, 소련이라고 하는 공산주의계열로부터 직접 연결될 수밖에 없는 무장투쟁노선, 그것 하나만을 왜 항일운동의 본류로 인정을 하느냐, 그 점인 겁니까?
◆ 박성현> 그리고 거기에 대한 노선투쟁을 한 사람이 이승만이거든요. 그것의, 그 노선투쟁의 의미를 전부 돈 문제다. 지금 방금 말씀하셨듯이 왜 돈 안 내놨냐, 왜 너 여자랑 다녔냐, 그것도 다니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인격적으로 살인을 해 버리니까 그럼 노선투쟁 갖고 얘기하자 이거예요. 그런 지저분한 인격살인 한 거는 법정에서 가리시고. 그래서 제가 노선투쟁 바로 찍고 들어간 겁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바로 그런 무장투쟁노선에 대한 노선투쟁을 하신 분으로서.
◆ 박성현> 무장게릴라투쟁. 특히 공산계.
◇ 정관용> 좋습니다. 그 결과 그래서 박성현 주필이 강조하고 싶으신 것은 중국,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만들어낸 성과가 있는 거 아니냐, 그래서 그걸 주장하고 싶으신 거죠?
◆ 박한용> 핵심적 주춧돌이죠.
◇ 정관용> 그리고 박한용 실장께서는. 그러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이 편 이른바 외교노선 그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다라고 지적하시는 거죠?
◆ 박한용> 그러니까 먼저 백년전쟁은 외교투쟁노선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 정관용> 그건 아까 말씀하셨고.
◆ 박한용> 이승만 외교노선이라는 문제가 유달리 무장투쟁에 대해 적대적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지, 그러나 우리는 무장투쟁의 적대적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여기에는 이승만 외교노선 자체가 실제로 봤을 때 구미위원부의 활동자체에서 대통령 시절에.
◇ 정관용> 구미, 뭐요?
◆ 박한용> 구미위원부라고 있습니다. 이른바 미주지역의 임시정부의 조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마땅히 이런 부분에서 이루어져야 될 외교활동 자체가 재정활동들이 이승만 정권에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런 성과도 많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내용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얘기할 내용이기 때문에 생략했고. 두 번째로 지금 무장투쟁에 대해서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가 강하다는 겁니다. 다시 무장투쟁이라고 하는 부분은.
◇ 정관용> 그 얘기 제가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무장투쟁도 그 안에 좌익계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계열도 있고 여러 가지가 다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한쪽으로 몰아세우느냐, 색깔론 공세다, 그런 주장을 아까 펴신 겨죠?
◆ 박한용> 그런데 핵심이 사실 21년 이후부터 없었다고 얘기하고 다 좌익이 했다는데 지금 지청천 장군이 1930년대 전반기까지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십니다. 지청천 장군 나중에 광복군 총사령관 하신 분 아니에요. 이분이 1930년까지 했는데 이분이 무슨 좌익입니까? 그다음에 대전자령 전투라고 있어요, 30대 중반에. 이거 조선혁명군이 한 거예요. 이걸 대전자령 전투라고 합니다. 전혀 좌익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왜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면서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것 자체가 참 옛날 이승만 수법 비슷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이 10분 동안 하시려고 하셨던 말씀은 다시 한 번 청취자한테 전달해 드렸어요. 그러면 이제 박한용 실장께서는 생명의 길 측에서 왜 이렇게 강하게 백년전쟁의 부정을 하고 또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박성현 주필께서는 민족문제연구소는 백년전쟁은 지금 왜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지 서로에 대한 평가를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 박한용> 박성현 씨가 먼저 하시죠.
◆ 박성현> 아까도 나왔지만 아주 냉정하게 어떤 근본적인 몇 가지 전제를 인정하고 이승만 어떻게 해석할 텐데, 그 사람 과연 외교노선 유의미 했었어? 이렇게 점잖게 접근을 했었으면 저희가 이렇게 격분을 안 해요. 그런데 보신 분들이 많으시지만 그러니까 이소룡이 막 튀어나오거든요. 그리고 벌거벗은 여자들이 나오고, 수영복 입은 여자들이. 그러니까 이야기들이 뭐냐 하면 예를 덜어서 아까 외교천국, 투쟁지옥. 그다음에 아, 그분에게 답장이 오셨다 아, 이게 현실일까, 이승만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제가 마음에 들면 저를 뽑아주세요. 이러고서 내레이션 나와요.
◇ 정관용> 맥아더 부분에서.
◆ 박성현> 맥아더한테 편지 보내는 게. 그러면 이건 뭐냐 하면 대한민국의 그 비극적인 상황을 피땀을 흘리면서 살아왔던 선배세대 전체를 한마디로 계모로 취급한 겁니다.
◆ 박한용> 제가 하나를 물어보겠습니다. 그 백년전쟁에서 이승만 말고 누구를 또 그렇게 묘사를 했던가요? 선배 전체라고 하는데 다른 독립운동가를...
◆ 박성현> 왜 그런냐면, 아까도 잠깐... 정확히 표현할게요.
◆ 박한용> 말씀해 보세요. 아까 선배 세대라고 했는데 백범 김구 선생이 그렇게 얘기했습니까?
◆ 박성현> 정확히 표현할게요. 정확히 표현할게요. 백년전쟁에서 이승만이 대통령 뽑혔냐, 어떻게 설명하는지 아세요? 지역, 기독교... 개독교, 그다음에 학벌 팔아서 사람들이 속았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면 이승만은 9월에.
◆ 박한용> 언제 속았다고 나옵니까?
◆ 박성현> 거기 그렇게 나옵니다. 뽑으려고 똑바로 뽑아라가 제목 아닙니까? 그게 속았다는 얘기 아니에요? 한국말 뜻을 모르세요? 뜻도 모르고 한 말씀이세요?
◆ 박한용> 그렇게 해석하세요.
◆ 박성현> 그러면 이렇게 해놓고요.
◆ 박한용> 그렇게 해석하세요. 정상적으로 보시고 해석하시면 됩니다.
◆ 박성현> 아니요. 맞잖아요. 그 시대 때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은 다 바보라는 소리죠.
◇ 정관용> 제가 대신해 질문을 드릴게요. 박한용 실장님 표현에 있어서, 백년전쟁의 모든 표현에 있어서 좀 지나치게 희화화되어 있고 지나치게 그런 부분들이 다 사용되었다라고 지적하고 계신 건데요. 그런 기법을 사용하신 것에 대해서는 왜 그러셨는지 설명 좀 해 주시죠.
◆ 박한용> 야비하다는 표현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야비하다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고. 다큐멘터리도 하나의 창작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팩트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하고 그것을 대중들이 소통할 때 그 표방은 작가나 감독의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말하는 논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중들에게 읽히고 소통하고 공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얍삽빠르게 했다를 미꾸라지처럼 표현했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얘기가 안 되죠. 그렇게 얘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은 이걸 보신 분들이 판단을 하는 겁니다. 그 표현에 대한 과다한, 한국사회에서 그건 창작적 문제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대중적 전달을 위한 기법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답변들을게요.
◆ 박한용> 가장 중요한 건 팩트를 놓고 얘기해야 되는 겁니다.
◇ 정관용> 그러면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 주장까지만 듣고...
◆ 박성현> 먼저 제목이 백년전쟁이잖아요. 영화 처음에 대한민국에서는 부역자들에 대한 전쟁이 1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고 선언을 하고 들어가요. 아까 그건 영화 도입을 위한 거라고 그러는데 동영상 만든 사람들은 다 압니다. 첫 부분에 그걸 프레이밍을 딱 해서 그 창을 제공하는 겁니다.
◇ 정관용>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요?
◆ 박한용> 이건 뭐냐 하면 결국은 그 의도는 뭐냐 하면 대한민국은 수치스러운 나라고 친일파가 만들고 친일파가 운영해 온 나라고 태어나야 되지 말아야 될 나라다. 그러면 이거 태어나게 한 그 세대의 주역 중의 하나가 이승만이라는 놈이다, 그러니까 저 놈을 죽여라 이거예요. 증오에 가득 차 있어요.
◇ 정관용>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것을 전파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박성현> 그러니까 이승만 다큐, 그거 별것도 아닌 다큐예요. KBS에서 만들려고 들으니까 그 몇 달 동안 진치고 사람들이 놀았어요. 그때 이른바 깡통진보, 이른바 진보사람들이 뭐냐 하면 200만 학살자 이승만이에요.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증오예요, 증오.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입니다.
◇ 정관용> 지금 박성현 주필은 그렇게 해석하신 거고. 백년전쟁 팀은 그런 의도로 만들지 않았다라고 하시면 이유, 우리가 만든 의도는 이거다라고만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 박한용> 사실만 얘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승만 대통령은 사실 두 번이나 쫓겨난 대통령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4.19에서 민중의 피를 대가로 해서 쫓겨난 사람이에요. 그 동상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이승만을 국부라고 부르자고 했어요. 국부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4.19에서 무너졌던 동상이 남산에 다시 섰어요. 그다음에 대한민국에서 이승만에 대한 찬양이 일어났고 심지어 그렇게 해서 건국지령이 나왔죠. 이 건국지령의 내용은 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 문제가 되었어요. 어떤 내용이냐 하면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3년 동안의 어떤 피 흘린 투쟁으로 만들어진 국가다, 이것이 바로 건국절이라고 얘기했어요. 이렇게 하면서 어떤 얘기를 했냐하면.
◇ 정관용> 정부수립기념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그 논란?
◆ 박한용> 이 문제의 핵심은 뭐냐 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왔던 것이 뭐냐 하면 뉴라이트라고 하는 쪽하고 이명박 정부하고 같이 인식하고 조중동 다 같이 인식했던 기사들이죠. 여기에서 나온 핵심이야기가 이거예요. 이제 마땅히 대한민국 건국절을 만들면서 이 건국절의 핵심을 45년 8월 15일 이후로서 규정을 했어요.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성을. 그래서 이후에 3년 동안을 거쳐서 만들어진 국가라고 하면서 마땅히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으로 돌려야 한다고 얘기를 했어요. 이렇게 되니까 누구나 학자들도 인정하다시피 이 부분의 핵심은 일제시대에 항일했느냐, 안 했느냐는 관계가 없는 거예요. 오히려 일제시대에 친일했다 하더라도 정부 수립에 관여했다, 없다가 확인이 되면 그들이 건국 공로다라고 하는 이런 놀라운 발상을 합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어떻게 되죠? 백범 김구 선생 같은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에 관계하지 않으셨습니다.
◆ 박성현> 반대했죠. 정확히 말씀하신 거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반대하신 게 그분 일생의 치욕이죠.
◆ 박한용>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반대한 게 아니라 분단 정부를 반대한 거죠.
◆ 박성현> 그게 대한민국이죠.
◆ 박한용> 그건 다릅니다.
◇ 정관용> 잠깐만요.
◆ 박한용> 단 한 번도 분단된 국가로 산 적이 없어요, 고려시대 이래로.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제 36년의 다음에 분쟁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분단정부 한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분단이 되면 전쟁으로 가는 민족의 비극이 발생한다. 따라서 그러한 비극을 이끄는 단독적으로 북한이든 남한이든 간에 그것이 어떻게 온전한 정부가 될 수 있냐, 그 부분에서. 이런 부분이 뭐냐 하면 결국 반국가사범이 되는 겁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발상이 일어나는 이런 과정들 속에서 사실은 친일과 독재세력을 비하하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과정이 있고 금성교과서 파동이 나오고 그다음에 금성교과서뿐만이 아니죠. 한국근현대 역사를 좌익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그다음에 친일과 독재로 오히려 미화하는 이런 역사적 과정이 나오고 그런 맥락 속에서 바로 이승만 동상도 만들어지고 국부 운동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민족문제연구소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상식이고 하나의 통설과 정설화 되고 있는 이러한 부분들. 심지어는 헌법정신이 3.1정신을 계승하고 그다음에 4.19민주주의를 계승한다, 이 헌법정신에 반하는 사람을 기념하는 이 놀라운 일 자체야말로 대한민국 에 대한 반대한민국적 발상이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들이 알고 싶은 모든 수단이 언론이 장악 당했어요. 그래서 우리들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다큐의 형식을 빌어서 얘기를 한 것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시 생명의 길 등등으로 대응하는 것은 여전히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그런 목적이라고 본다, 그 말씀이신가요?
◆ 박한용> 그렇죠.
◇ 정관용> 그럼 양측이 상대방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시각까지 다 들어본 것 같고요. 각자가 초반에 주장하시고자 하는 얘기들도 아마 드러난 것 같습니다. 중요한 논점들은 다 등장을 했고요. 시간은 이제 거의 5, 6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제가 한 가지 정도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백년전쟁2도 그렇고요. 생명의 길도 2를 만들고 계시나요?
◆ 박성현> 네, 저희가 1987년 6.29 민주화항쟁까지 대개 한 8편에서 10편을 지금 기획을 하고 있죠.
◇ 정관용> 8년 내지 10편. 그러니까 2부는 지금 제작중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 박한용> 집필 중입니다. 2부와 3부에서 동시집필 중입니다.
◇ 정관용> 지금 백년전쟁도 2부가 현재 제작 중이죠? 거기도 역시 8부, 9부까지 막 가겠죠?
◆ 박한용> 저희들도 이승만으로는 끝나지 않겠죠.
◇ 정관용> 제가 두 분께 그냥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마 곧 또 바로 보시는 분들마다 평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두 편의 다큐 다 좀 거칠거든요. 그래서 조금은 더 세련되게 조금 더 정제되게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을까? 이런 부탁을 두 분께 다 드려보면 어떨까 싶은데 어떠세요?
◆ 박성현> 좋습니다.
◆ 박한용> 저희로서는 괜찮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아마도 토론도 조금 더 토론다워지고 서로 감정상하는 일이 조금씩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무리 발언 한 2분, 3분 정도씩 드릴 수 있겠네요. 한 분당 3분씩 마무리 발언하시죠. 누가 먼저 하시겠습니까?
◆ 박한용>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이렇게 많은 귀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로서 민족문제연구소와 백년전쟁 제작팀은 사실 오늘 이 토론에서 많은 청취자분들이 궁금해 하실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희들이 상당히 많은 자료들을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이 아까 말씀드렸지만 가장 저희들이 이 토론에 임할 때 어려운 것이 어떤 사실과 이야기를 하기보다 이 자리에서 늘 나오는 색깔론.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적용이 되지 않올 수밖에 없는 그런 색깔론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어떤 좀 내용 있는 토론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또 이렇게 잘못 어그러뜨리면 어떨까 할까, 우려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오늘 그런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박성현 선생께서 늘 자유민주주의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자유민주주의 동의하시죠?
◆ 박성현> 네.
◆ 박한용> 토론은 아닙니다. 확인은 하고 매듭짓고 싶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맞죠?
◆ 박성현> 네.
◆ 박한용>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신 분이 그러면 부산에서,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서 군대를 이끌고 그다음에 깡패를 이끌고 국회를 해산시키고 대통령 헌법을 고쳐버렸어요. 그다음에 사사오입 파동 아시죠?
◆ 박성현> 그거는 아니었을 걸요. 팩트는 정확히 지켜주시죠.
◆ 박한용> 저는 이렇게 봅니다. 그다음에 4.19 때도 마찬가지겠죠. 제가 말씀드린 것은 박성현 선생께서 자유민주주의 얘기할 때 정확하게 얘기하면 초대 대통령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주범이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우린 첫출발이 어그러졌고 이러한 어그러진 원인이 어디에 있냐 하면 그 이승만의 퍼스날리티라든지 오히려 그런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그 행적을 같이 본 거예요. 저는 그런 점에서 박성현 선생께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자유민주주의다운 가치체계를 가지고 많이 봐주시기를 바라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정관용> 1분 정도 남았는데 마무리지셨고요. 자, 마무리 발언. 박성현 주필.
◆ 박성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역사연구에는 두 개의 원칙이 있거든요. 하나는 생명번영의 길을 존중해 줘야 되고 진실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련 전체주의, 공산 전체주의. 또 모택동 공산 전체주의를 바로 접경한 그런 지적, 지정학적 공간이었죠. 그 공간 안에서 그 죽는 자리거든요. 이 정도의 번영의 초석을 놓고 길을 뚫어왔을 때는 이승만을 비롯한 그 선배세대 전체가 결국에 가서는 그 분들이 선택을 하고 그분들이 그 길을 뚫으신 거거든요. 거기에 대한 일말의 존중심은 가져야.
◆ 박한용> 그러면 이승만 말고 다른 분 한 번 얘기 들어볼게요.
◆ 박성현> 그러니까 제 말씀은 거기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은 가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아까 완전히 사고방식이 다른 게 이런 데서 드러나는 데 항일이면 좋다, 항일이냐 반일이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이승만 그때 분명히 이런 연설이 있어요. 이런 글이 있어요. 일제 때 이미 1920년대인가요. 사람들이 항일을 한다고 하면서 독에 받혀 애국을 할 줄을 모른다 그런 얘기를 해요. 그때 애국이라는 건 정말 우리 조선동포가 살아나갈 길에 대해서 고민 안 한다는 거예요. 항일에만 독이 받쳐서. 항일에만 독이 받친 사람들이 만주에서 소련 공산당, 중국 공산당에 이용당해서 피곤죽되고 그 인맥에 타고 들어와서 결국 북한의 저런 세계에서 가장 흉악한 전체주의 체제가 들어왔고. 그게 오늘날 세계문명으로 완전히 이탈해서 저렇게 사고치고 있는 상태거든요. 이승만의 무려 1923년에 공산주의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해요. 그때 다섯 가지를 듭니다. 하나는 첫째 1923년이에요. 전세계에서 제일 빨라요. 첫째 기업가를 없애면 혁신이 없어진다. 재산을 없으면 근로의욕이 쇠퇴한다. 지식인을 없애면 문명이 쇠퇴한다. 종교를 없애면 타락한다. 마지막으로 소련 믿지 마라 사회주의 조국으로 떠받들지 마라 하나의 국가일 뿐이다. 그걸 그 양반이 1923년에 쓴 글입니다.
◆ 박한용> 지금 말씀이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최고의 가치는 일제시대부터 반공투쟁하셨다는 얘기죠?
◆ 박성현> 아니요, 반공은 아니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 정관용> 마무리 발언하실 시간입니다.
◆ 박성현> 세계시장과 개방적인 질서와 같이 갈 수 있는 독립국가를 꿈꿨어요. 그건 이미 1904년 그 사람이 한성감옥에서 사형수로 있다가 감형돼서 무기수로 가고 극심한 고문 받았을 때 독립정신에 이미 다 나타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승만을 1898년 만민공동회 지도자. 이씨, 왕씨를 흔들었던 그때부터 1960년까지 63년을 대한민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람이에요. 제발 조금 그분이 과도 많지만 그분이 했던 근본적인 6.25 남침을 이겨냈다든지 대한민국의 기초를 놨다든지 한-미 동맹을 만들었다든지 우리를 개방세계로 끌고 간 이런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공적에 대한 인정을 좀 하셨으면 좋겠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마무리 발언 3분씩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가 또 드러났습니다. 박한용 실장. 건국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한 바로 그 장본인 아니었느냐라는 그 대목을 좀 강조해 주셨고. 박성현 실장께서는 소련과 중국이라고 하는 공산세력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바로 초석을 닦은 주역 아니었느냐 두 가지 말씀, 두 가지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두 일을 다 하신 거 맞죠.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 만들었고요. 또 4.19를 만들게 만든 자유민주주의 체제 부정하고 파괴한 거 또한 맞습니다. 그 두 가지 모습, 여러분은 어느 쪽 모습을 더 눈여겨보고 계신지 바로 그 토론이 오늘의 토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고해 주신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오늘 애 많이 쓰셨고요. 다음에 다시 우리 만날 때는 조금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토론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 박성현> 고생하셨습니다.
◆ 박한용>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