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소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도살장이었다"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로 동원한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86) 할머니는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지방 정부가 직접 만든 버겐카운티의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위안부를 추모하는 기림비에 꽃을 바친 이 할머니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기림비를 지켜봤다.
기림비 동판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sexual slavery)를 강요당한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출신의 수십만 여성과 소녀들을 추모하며"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할머니는 기림비 방문에 앞서 기림비 건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캐서린 도너번 버겐카운티장을 만났다.
도너번 카운티장은 "한국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고 할머니를 모시게 돼 영광"이라고 이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했던 도너번 카운티장은 당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면서 "기림비를 세우겠다"고 약속했고 올해 3월 버겐카운티 법원 앞의 '메모리얼 아일랜드'에 기림비를 건립했다.
'메모리얼 아일랜드'는 미국 노예제도로 희생된 흑인과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아일랜드 대기근, 아르메니아 학살 등을 다룬 4개의 추모비가 있어 인권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 할머니는 도너번 카운티장에게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며 감사를 전하고 "15살에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3년 동안 있었던 위안소는 사람이 사는 곳이 이나라 도살장이었다"고 아픈 과거를 돌이켰다.
그는 "위안소에서 탈출하다 잡혀 칼질까지 당했고 죽지도 못했다"며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도 찾았다.
한인 권리신장 운동 단체인 시민참여센터의 초청으로 미국을 찾은 이 할머니는 지난 11일 뉴욕시 퀸스커뮤니티칼리지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에서 미국 대학생들과 만나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했다.
이 할머니는 오는 17일과 18일 워싱턴DC에서 한인 단체들과 함께 이민개혁 법안의 하원 통과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미국 연방 하원의 위안부 결의 채택 6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오는 30일에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글렌데일에서 열리는 미국 1호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글렌데일 시의회는 지난주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기리고 인권유린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려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과 같은 '평화의 소녀상'을 시 공유지에 세우는 안을 최종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