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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강호 "설국열차는 또다른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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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송강호 "설국열차는 또다른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 얘기"

    열차 비밀 아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 역…"절대자 윌포드보다 큰 이상 품은 진짜 야심가"

    사진=이명진 기자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에서 보안설계자 남궁민수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46)는 극 초반 20여 분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신 노아의 방주' 격인 열차 안 반란을 꿈꾸는 꼬리칸 사람들 사이에서 앞칸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냄'으로 회자될 뿐이다.
     
    그러다가 다소 엉뚱하게 등장해서는 도움을 달라는 반란군의 제안에 강렬하게 다가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극중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귀한 담배를 피워 물고는 말이다.
     
    24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에게 그 표정의 의미를 물었더니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냐는 경고"라고 답했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17년 동안 열차 안에서 살면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표정 하나에 담고 싶었죠.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 버린 존재로서의 무관심 말입니다. 담배 연기가 만들어내는 몽롱한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했죠.
     
    극중 인물들이 영어로 대사를 하는 가운데 오롯이 한국말로만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첫 등장에서 "당신이 냄이냐"고 영어로 묻는 반란군에게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냄이 아니라 남궁"이라고 바로잡아 주는 장면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극 초반 외국 배우들의 영어 대사만 듣던 관객들이 남궁민수의 한국말을 듣는 순간 이질감을 갖고 '중요한 인물이 나왔구나'라는 인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것이 송강호의 설명이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남궁민수는 한국말을 쓰는 걸로 돼 있었어요. 극중 열차는 다양한 언어를 쓰는 인류가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한국어가 나온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고요. 잘 못하는 영어를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었죠."
     
    그는 봉준호 감독과 전작 '살인의 추억(2003년)' '괴물(2006년)'을 함께 해 온 영화적 동지다. 설국열차를 통해 "체제나 시스템의 조악한 실체를 보여 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인지했던 것도 그 덕이리라.
     
    "애초부터 이 영화가 달려가는 지점을 알고 있었어요. 사실 배경만 한강에서 열차로 변했을 뿐이지 설국열차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괴물과의 싸움을 다룬 영화라고 이해했죠. 고아성 씨와 다시 한 번 부녀로 나오는 것도 괴물의 연장선이고요."

    -남궁민수는 어떠한 인물인가.
     
    "유추해 봤을 때 규칙대로 살거나 지배자가 된다고 해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애초부터 아는 사람이다. 보안 설계자인 만큼 열차 탄생의 비밀을 아는 몇 안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지 않나. 그는 열차칸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다양한 거래를 하다가 반체제 인사로 감옥칸에 갖혔을 것이다. 남궁민수의 이상은 열차의 절대자 윌포드(애드 해리스)를 앞서 있다고 본다. 극중 진짜 야심가는 남궁민수다."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출연을 확정했다던데.
     
    "괴물 때도 비슷했다. 봉 감독에게 '가족이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 싸우는 영화'라고만 들었었다. 당시 CG 기술이 초보 단계였으니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황당했다. 괴물 때도 그랬지만,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역시 봉준호'라는 생각을 했다. 투수로 봤을 때 괴물이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였다면, 설국열차는 돌직구를 선호하는 투수 같은 느낌이다. 기교 부리지 않고 기차처럼 밀어붙인다고 할까."

    사진=이명진 기자

     

    -봉 감독의 변화를 옆에서 봐 온 배우로서 그에 대한 인상은.
     
    "그와 영화를 하면 신기한 설렘을 갖게 된다. 살인의 추억 때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괴물을 하면서는 그 역량 위에 예술적인 가치를 얹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설국열차는 그러한 작업을 함에 있어 자신감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점점 진화하고 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직구, 변화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외국배우들과 작업하면서 경쟁의식은 없었나.
     
    "그럴 겨를도 없었다. 굉장히 좋은 영화에 내 연기가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커서였다. 그런 것이 부담이었고 욕심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연기를 보면서 경탄했다. 틸다 스윈튼이 첫 촬영하던 날에는 배우들이 다 나와서 구경을 했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배우가 내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외국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은 어땠나.
     
    "크게 크리스 에반스를 축으로 한 미국과 틸다 스윈튼, 이완 브렘너 등 스코틀랜드 배우로 나눌 수 있다. 미국 배우들이 자로 잰 듯한 약속된 대사와 동선으로 연기하는 데 반해, 스코틀랜드 배우들은 창의적인 제안을 많이 하더라. 틸다 스윈튼은 촬영 시작 전에 봉 감독에게 다가가 '잠자기 전에 생각해 봤는데…'라며 대사에 대한 의견을 자주 냈다. 이완 브렘너의 경우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고아성에게 한국어 대사를 배워서는 틸다와의 촬영 장면에서 갑자기 한국말로 '너 까불면 팔 잘라 버릴 거야'라고 하더라. 물론 편집됐지만, 열차 안에서 여러 언어가 쓰이니 가능한 설정 아닌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코틀랜드 배우들의 정서는 우리와 무척 비슷했다."

    -일과처럼 정해진 시간에만 촬영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현장이 돌아갔다던데.
     
    "배우, 스텝의 권위를 생각해 쉴 수 있는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합리적으로 일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 푹 쉬는 시스템이다. 전작 '남극일기(2005년)' 때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하면서 대충은 알았는데, 본격적으로 해본 건 처음이다. 많이 긴장되고 부담도 크더라. 좋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다. 담배 태울 시간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갔으니까. (웃음) 이러한 경직성은 맘에 안 들더라. 일장일단이 있다."

    -설국열차, '미스터 고'는 국제 경쟁력을 가진 K필름으로 꼽힌다.
     
    "그 자체로 뿌듯하다. K필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니 말이다. 독특한 한국만의 영화 문화가 있다. 해외에서도 다 인정하는 최고의 감독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뿌듯하고 좋다. 앞으로 환경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작업해 온 세계적인 배우로서 감회는.
     
    "세계적인 배우라……. (웃음) 나는 많은 팬을 거느린 지명도 높은 배우가 아니다. 한국 영화를 통해 외국 관객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설국열차의 경우도 봉 감독과 함께 했기에 국제적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나를 알게 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할리우드 진출 제안이 들어온다면.
     
    "전혀 계획 없다. 사실 진출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각각의 문화는 독창성과 고유한 색깔이 있다. 배우도 그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출보다는 전파가 더 적합해 보인다. 경쟁력 있는 다양한 한국 영화를 통해 유럽이든 아시아든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 아닐까? 사실 영어도 부담이 된다. (웃음)"

    -설국열차를 볼 관객들에게 한마디.
     
    "봉준호 감독은 유럽, 미국 어느 나라에도 없는 묘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많은 예술가 중에도 이런 세계관을 가진 이는 드물다고 본다. 독특한 경쟁력을 가진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탐닉하는 즐거움과 우리에게 이런 예술가가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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