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컷뉴스 송은석 기자 raphacondor@cbs.co.kr)
축구 한일전이 펼쳐진 잠실벌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언이 적힌 대형 걸개가 등장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 전쟁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대형 현수막도 관중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은 즉각 불쾌한 심정을 내비쳤다. 일본 기자들은 지난 28일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된 2013 동아시안컵 대회 한일전이 끝난 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대형 걸개가 등장한 배경과 협회의 대응 및 입장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또한 '산케이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29일 "일련의 행위는 응원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저촉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일본 언론들은 작년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이 끝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던 박종우가 FIFA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관중이 던져준 '독도는 우리 땅' 플래카드를 들고 운동장을 달렸던 박종우는 A매치 2경기 출전 정지와 약 400만원의 벌금 징계 처분을 받았다. 경징계였다.
일본의 반응을 감안하면 '붉은 악마'의 응원이 일본을 자극한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은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대형 현수막이 등장한 시점에 일본 서포터스석에서 등장한 욱일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듯 보인다. 욱일기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로 또한 전쟁 범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전범기다.
일본의 강제 점령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았던 한국 땅에서 욱일기가 휘날린 것은 자극을 넘어 도발에 가깝다는 것이 그 장면을 지켜본 팬들이 갖는 일반적인 정서다.
욱일기는 등장하자마자 현장 요원의 제지로 자취를 감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걸개 역시 전반전이 끝난 뒤 사라졌다. 대한축구협회의 강경한 대응에 화가 난 '붉은 악마'는 후반전 응원을 보이콧했다.
한국은 후반 막판 일본에 결승골을 내주고 1-2로 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축구와 관련없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응원을 불허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붉은 악마'는 일본으로 유출돼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 중인 조선왕실 투구와 갑옷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내걸 예정이었으나 대한축구협회의 반대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철저한 보안으로 관중석에서 정치적인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대한축구협회의 의지는 대단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일본 관중석에는 욱일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먼 국내 축구 팬들만 상처를 받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일본 원정 때 관중석에서 휘날린 욱일기에 분노한 전북 현대가 홈 경기 때 철저한 보안과 감시로 욱일기 반입을 막았던 전례가 있다. 전북의 적극적인 대처와 노력과 비교되는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