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무더위가 절정을 이룬 10일, 서울광장이 국정원 규탄을 외치는 촛불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날 서울 광장 5만명 등 전국 각지에서 10만명의 시민이(주최측 추산)이 6번째 촛불을 들었다.
주최측은 국정원 개혁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첫 기조연설에 나선 박석운 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국정원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있는데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계속 모르는 일이냐고 우길 거냐'며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경찰이라면 범죄 혐의를 확안했을 때 사냥개처럼 쫓아가 진돗개처럼 물어야 하지만 지난해 12월 경찰은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도 그러지 못했다"며 "경찰이 범죄자가 남긴 증거를 인멸해주고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표 전 교수는 또 "시간과 역사는 진실과 정의의 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며 "전두환 독재 정권과 히틀러 나치 통치가 영원하지 않았듯 이번 국정원 개입은 다음 정권에서 혹독히 처벌 받을 것"이라고 강력히 정부를 규탄했다.
정치인들의 시국 연설도 이어졌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유린된 민주주의를 회생시키고 짖밟힌 주권을 사수하기 위해 시민의 광장에 깨어있는 시민과 함께 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아내 재발 방지와 대통령의 사과,국정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정신 못차리고 있지만 선거 결과를 바꾸자는 것은 아니니 너무 쫄지 말라"는 말에는 시민측에서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시민들은 '박근혜 하야'가 적힌 피켓을 올리며 "그게 아니다! 민주당 나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결국 전 원내대표는 시민들의 야유 소리에 묻혀 발언을 채 끝내지 못하고 서둘러 무대를 내려왔다.
전 원내대표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오른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 사건의 핵심은 박근혜 캠프가 조직적으로 국정원과 경찰 수뇌부를 불법 동원한 것"이라며 "최대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사태를 책임져야 민주주의가 회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새누리당은 민주주의 사이에서 불온이니 과격이니 딱지 붙여놓고 민주주의 세력을 분열시켜 왔다"며 "촛불은 하나라고 당당히 말하자"고 외쳤다.
이날 집회는 두 시간여 동안 이어진 뒤 저녁 9시 30분쯤 별다른 충돌 없이 끝이 났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아쉬운 마음에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삼삼 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진격의 촛불'이라는 피켓 머리띠를 직접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 김정민(22)씨는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이 문제에 관심 가져야 할 것 같아서 집회에 나오게 됐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하야'라는 피켓을 막대 풍선에 매달아 흔들던 시민 박정운(58)씨도 "국정원 개입과 경찰 수사 등 모든 일에 박 대통령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이 모든 걸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광장 일대에 경찰력 113개 중대, 여경 1개 중대 등 총 6천800여명을 배치했다. 반면 집회 참여 인원은 1만 6천명으로 추산해 주최측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한편 같은 시각 서울광장 건너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는 대한민국재향경우회와 한국자유총연맹,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이 트로트 등 음악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