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막바지에 강제 징용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에서 일하다 원폭 피해를 봤던 고(故) 김순길 씨가 기록한 179일간의 일기가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포럼 진실과정의가 펴내는 과거청산 전문잡지 '역사와 책임'은 최신호(5호)에서 일본어로 쓰인 김씨의 일기를 우리말로 번역해 실었다.
1945년 1월 9일 일본에 끌려간 김씨는 나가사키조선소에 배치된 그해 2월 12일부터 미군의 나가사키 원폭 투하 하루 전날인 8월 8일까지 일본에서의 비참한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강제동원, 강제노동, 원폭 피해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담은 이 일기는 귀국 후 수십 년간 김씨가 보관해 오다 1992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를 상대로 제기한 피해보상소송에서 증거자료로 제출됐다.
20년 전에 공개된 김씨의 일기는 지난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일기 전문이 우리말로 옮겨져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역사와 책임' 편집부는 밝혔다.
김씨의 일기는 '출장수첩'이라고 써진 작은 포켓용 수첩에 192쪽에 걸쳐 기록됐다.
이 일기에 대한 해제는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맡았다.
김 연구원은 김씨의 일기 원본과 일본 법정에 증거자료로 제출된 탈초본을 대조해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역사와 책임' 은 "이 일기는 강제동원과 피폭의 실태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임과 동시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희생됐던 수많은 한국인과 아시아인들의 비통한 절규의 기록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함께 온 350명과 함께 나가사키조선소에 배속돼 기계·철판 등을 운반하는 일을 담당했던 김씨의 일기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비참했던 징용 생활 등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오늘 소포를 받았음. 내역-콩가루와 칡가루 혼합 약 1되, 맛 대구포 약간, 김 20장, 김 10장은 제2중대 숙사를 돌보는 아줌마한테 드렸음. 오늘 소포는 기뻤다. (기다려지는 것은 고향에서 오는 편지)"(1945년 2월 12일)
늘 배고픔에 시달렸던지 일기에는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울러 점차 격렬해지던 공습과 전쟁의 공포 앞에서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징용공들의 불안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일기는 "나의 생명이 계속되면 추억도 새로 일어날 잊을 수 없는 날이며, 조선독립의 기원일이다.
'악마 나가사키'로부터 귀국길에 오르는 것은 8월 12일 오후 8시"라고 끝맺고 있다.
지옥 같던 나가사키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1992년 강제동원, 강제노동, 피폭에 대한 손해배상과 미불임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 나가사키지방재판소에 제기해 외로운 투쟁을 벌였으나 1997년 말 패소했으며 항소심이 진행되던 1998년 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번역 분량에 따라 최신호에서 김씨의 일기 가운데 1945년 2월 12일부터 4월 30일까지만 다룬 '역사와 책임'은 다음 호(6호)에서 나머지 분량을 연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