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덮은 그날의 진실을 내 손으로 밝혀내겠다고 죽은 딸과 약속했죠. 아빠로서 이제야 지킨 것 같네요."
5일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피해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1학년)양의 아버지 정현조(66)씨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씨는 2년전부터 이곳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15년전 대학 새내기던 정씨의 첫재 딸은 1998년 10월 새벽 구마고속도로에서 23t 덤프트럭에 받혀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후 딸이 성폭행을 당한 흔적 등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의문이 쏟아졌지만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건을 축소하려는 경찰에 맞서 정씨는 자신이 직접 딸의 죽음을 파헤치기로 결심했다.
'사고 당일 집과도 멀리 떨어진 외진 고속도로를 왜 정처없이 걸었는지', '속옷은 왜 벗겨진 상태였는지' 등.
이 같은 의문을 풀어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아빠의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던 반찬가게는 아내에게 맡기고 정씨는 백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단 하루도 의문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딸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석연찮은 수사를 알리고 목격자 등을 찾기 위해 온라인에 추모카페도 개설, 운영했다.
이런 와중에 "가족들이 다치는 것이 싫으면 이쯤에서 그만두라"는 정체불명의 협박전화가 종종 집으로 걸려오기도 했지만 그럴 수록 더욱 매달렸다.
정씨는 "수사를 제대로 해달라며 청와대, 법무부 등에 60여차례나 탄원서, 진정서 등을 보내고 직접 찾기도 했다"며 "작은 제보라도 들어오면 물불가리지 않고 전국을 헤집고 다녔다"고 말했다.
딸의 죽음 후 어머니 윤모(62)씨는 정신적 충격으로 여전히 고통을 받는 상태다.
또 손녀를 끔찍이 아껴 "살아 생전 왜 사고를 당했는지 만이라도 알고 싶다"던 할머니(98)는 지난해 결국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딸이 사고를 당한 이유가 이제야 밝혀지고 범인도 잡혔지만 아직 믿기지 않는다"며 "새롭게 드러난 사실로 남은 가족들이 또 상처를 받을까봐 겁도 난다"고 했다.
정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숨진 딸의 사진을 보관하며 수시로 들여다 본다고 했다. 휴대전화 속 사진엔 숨진 딸을 포함해 정씨 가족이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있다.
정씨는 딸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이제 다 잊고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지내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