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피하기 위한 막판 정치권 협상이 진통을 거듭하는 가운데 미국 신용등급 강등 경고까지 나왔다.
따라서 지난 2011년 8월 정부 부채 상한 증액 협상이 막판에 타결됐으나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돼 전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린 '2011년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15일(현지시간)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negative watch)으로 지정하고 부채 상한이 증액되지 않으면 현재 'AAA'인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겠다고 밝혔다.
피치는 "미국의 부채 상한이 조만간 증액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정치권의 벼랑 끝 대결 등으로 미국 디폴트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미국 정부가 실제로 부채 상환에 실패하면 상환이 이뤄질 때까지 신용등급을 '제한적 디폴트'(restricted default)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정부 부채 상한 문제로 미국 여야가 갈등을 빚은 끝에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미국 등급 하향으로 이어진 2011년 8월 위기와 점차 흡사해지는 양상이다.
당시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추자 세계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 주가는 순식간에 15% 이상 폭락했고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약 반년이 걸렸다.
당장 제일 큰 쟁점은 디폴트가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다.
미국 상원 여야 지도부는 잠정예산안과 부채 상한 증액안에 거의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화당 하원 지도부가 연방정부 지출은 12월 중순까지 허용하고 부채 상한은 내년 2월 초 몫까지 늘리는 자체 법안을 마련하자 백악관과 민주당이 강력히 반발해 협상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 대치 상황은 협상 시한을 이틀 앞두고 자기편 몫을 최대한 얻어내려는 막판 줄다리기를 통해 결국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사상 초유의 미국 정부 디폴트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여야 지도부에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주도한 공화당이 최대 목표인 건강보험 개혁(오바마케어) 예산 삭감을 사실상 포기해 나머지 쟁점들은 여야 간 타협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에 하나 17일까지 타결되지 않더라도 정부 현금이 고갈되는 시점까지는 며칠 더 여유가 있어 실제 디폴트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더욱 작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정부의 현금 고갈 시점을 정확히 꼽을 수는 없으나 오는 22∼31일 사이에 고갈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디폴트 현실화 가능성이 작다면 2011년 위기 같은 큰 충격이 시장에 가해질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당시 막판 협상 타결에도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S&P와 달리 피치는 디폴트 발생이 등급 강등의 조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번에 타결이 되더라도 미국 정치권발(發) 리스크(위험성)가 조만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협상에서 논의 중인 방안들이 부채 상한 도달 시점을 길어야 수개월 늘리는 미봉책에 가까워 지금 같은 홍역을 다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앞으로 몇 주는 디폴트 위기를 넘길지라도 진짜 문제는 내년'이라는 쪽으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든 앤드 컴퍼니의 마이클 퍼베스 세계 투자 책임자는 NYT에 "재정 위기의 시간대가 내년 1∼2월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미국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 2주를 넘긴 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으로 이미 시작된 경제 타격이 커지면서 정치가 미국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부채 한도 증액 협상도 막판에 타결됐다"며 "이번에도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초래할 수 있는 디폴트는 정치권이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협상이 무산되면 꼬리 리스크(tail risk·가능성은 희박하나 일단 일어나면 영향이 엄청난 위험성)가 현실화된다"며 "아직은 관망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