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10월 중국은행이 처음으로 전국의 지점을 네크워크로 연결해 감시체계를 구축한 결과 무려 4억8천2백만달러의 자금이 부족한 사실을 포착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광둥 카이핑 지점(广东开平支行)이었고 사건 발생 전후로 지점장을 맡았던 세 명이 행방불명이었다. 공안기관 조사결과 이들 세 명은 이미 홍콩을 거쳐 캐나다와 미국으로 도주한 뒤였다.
지난 여름 역시 중국 광둥(广东)성에서는 두 명의 ‘정치협상회의’(정협) 최고 책임자가 홀연히 외국으로 사라졌다.
한 명은 7월에 ‘실종 처리된’ 선전시 난산(南山)구 원링(溫玲) 주석이고 다른 한 명은 6월부터 ‘연락이 끊긴’ 광저우(广州)시 화더우(花都)구 왕옌웨이(王雁威) 주석이다.
사라진 금융기관 종사자나 관료들은 공통점이 있다. 부정부패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수사 선상에 올랐고 다른 나라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부인과 자녀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관리를 ‘뤄관(裸官)’이라 부른다. ‘벌거벗은 관리’라는 뜻으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족은 외국에 살고 혼자만 국내에 있는 공직자를 일컫는다.
뤄관 대부분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해외로 빼돌린 데다 외국 여권을 가지고 있어 자신에 대한 사찰 조짐이 포착되면 바로 출국해 버리는 것이다.
뤄관은 타락한 중국 관료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홍콩의 원회바오(文匯報)는 16일 최근《财经》에 나온 ‘중국 뤄관보고’(中国 裸官报告) 기사를 인용해 뤄관 현상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주한 뤄관은 만6천명에서 만8천명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빼돌린 자금은 무려 8천억위안(우리돈 140조원)에 이른다.
또 해외투자기구의 책임자와 정부관원, 금융업 책임자급에서 뤄관 현상이 가장 많았다.
취재 중 확인된 59명의 뤄관 가운데 금융업 종사가가 24%였고 빼돌린 금액은 평균 18억위안이었으며 나이는 30대에서 40대가 가장 많았다.
뤄관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중국은 2010년부터 국가부패예방국 주도하에 뤄관에 대한 감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2010년 5월에는 중공중앙판공청(中共中央办公厅)과 국무원판공청(国务院办公厅)이 배우자와 자녀가 해외에 거주하는 국가직 인원에 대해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또 2012년에는 공직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해외로 나가 있는 경우 원칙상 당정의 정식 직위와 중요하고 민감한 직위를 맡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올 들어 뤄관에 대한 엄격한 관리는 고위지도자들의 명확한 목표가 되었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지난 3월 22일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11월 18차 당 대회 전후로 지도부 인사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살고 있던 자녀를 귀국시키고 있는 현황을 소개했다.
이들 중에는 시진핑 주석의 딸, 리커창(李克强) 총리 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 아들, 왕양(汪洋)과 마카이(馬凱) 부총리 딸이 포함돼 있다.
중국 언론이 뤄관 현상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는 것은 시진핑 주석 취임이후 진행되고 있는 강력한 부패척결운동 및 사정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