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만아 쌩큐~!' 28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5이닝 8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친 두산 이재우(오른쪽)와 3회 2사 만루에서 삼진으로 기회를 날린 삼성 박석민.(자료사진=두산, 삼성)
사자가 궁지에 몰렸다. 사상 첫 정규리그 3연속 1위 삼성의 3연속 한국시리즈(KS) 우승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두산에 1승3패로 쫓기며 자칫 사상 첫 정규리그 4위의 우승의 제물이 될 처지다.
무엇보다 타선 부진이 심상치 않다. 4차전까지 총 7득점으로 평균 1.75점에 불과하다. 팀 타율도 1할7푼5리로 허덕이고 있다. 정규리그에서 삼성은 팀 득점 2위(경기 당 5.23개), 타율 3위(2할8푼3리)였다.
사실 마운드는 1차전을 빼고 3경기 모두 제몫을 톡톡히 해줬다. 2차전 연장 12회까지 1실점으로 막았고 3, 4차전도 2실점으로 버텨줬다. 1차전에서만 선발 윤성환의 난조로 7점을 줬을 뿐이었다. 최소한 나머지 3경기에서 2승 정도는 챙겨줘야 했다.
하지만 삼성은 2차전에서 잔루만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인 무려 16개나 기록하는 빈타에 시달렸다. 득점 가뭄 속에 4이닝을 철벽처럼 지켜줬던 오승환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연장 13회 결승포를 내주고 말았다.
▲"삼성 타선, 예상 밖…준비한 거 맞나?"4차전에서도 삼성은 잔루 8개를 기록했다. 1회 2실점한 선발 배영수에 이어 차우찬이 8회 2사까지 무실점했지만 타선은 끝내 마운드의 역투를 외면했다.
4차전 승리 투수이자 MVP 두산 선발 이재우의 발언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재우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삼성 타선이 KS 준비를 많이 했을 텐데 예상 밖"이라면서 "어제(3차전)는 타격감이 많이 올라왔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달랐다"고 말했다.
삼성은 3-2로 이긴 27일 3차전에서 두산보다 2개 많은 7안타를 쳐냈다. 1차전(6-12), 2차전(7-10) 이후 처음으로 더 많았다. 사실 타선이 힘이 승리의 원동력은 아니었다. 상대 실책 2개와 폭투로 얻은 점수였고, 병살타도 3개가 나왔다.
하지만 안타가 많이 나온 것만큼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2차전까지 무안타였던 톱타자 배영섭이 첫 안타를 생산했고, 승부처에서 침묵한 이승엽이 첫 장타를 때려냈다. 4차전 선발이 두산에서 가장 약한 이재우임을 감안할 때 4~5점은 뽑으리라 예상됐다.
삼성은 그러나 4차전에서 4안타로 단 1득점에 머물렀다. 8회까지 꽁꽁 얼어붙었다가 9회 간신히 1점을 내 영패를 면했다.
▲"볼에 알아서 파울…상대 투수 도와준 꼴"살아나는 듯했던 타선이 왜 다시 죽었을까. 이재우의 말에서 해답이 나온다.
이재우는 "사실 초반 스트라이크존이 흔들려서 힘들었다"고 했다. 실제 3회 위기도 있었다. 1사 후 김태완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이재우는 채태인의 안타에 이어 최형우도 볼넷으로 내보냈다. 세 타자에게 던진 13구 중 스트라이크는 4개에 불과했다.
명백히 제구가 흔들린다는 증거였다. 이후 박석민에게 던진 공 2개도 모두 볼이었다. 진득하게 밀어내기 볼넷이나 실투를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이재우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박석민은 2볼에서 바깥쪽 낮은 볼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후 역시 낮은 볼에 하프 스윙을 하다 파울까지 나왔다. 단숨에 불리한 볼 카운트 2-2가 됐다. 이후 몸쪽 높은 직구 스트라이크에 서서 삼진을 당했다.
이재우는 "상대가 알아서 파울을 쳐줬다"고 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도 "박석민이 나쁜 공에 방망이가 나가서 이재우를 도와준 꼴이 됐다"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이에 살아난 이재우는 당초 타격전 예상을 깨고 5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잡아내며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이재우의 말대로 삼성 타선은 덤볐다. 나쁜 공에 헛방망이질을 해댔고, 치기 좋은 공은 지켜봤다. 5회 정병곤과 배영섭의 '전봇대' 삼진과 김태완의 바운드 볼 헛스윙 삼진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날 삼성은 무려 12개 삼진을 당했다. 삼성 타선이 그만큼 조급했다는 뜻이다.
▲"욕심에 스윙 커져" 침착함 찾아야
'3차전의 영웅과 4차전의 패인' KS 3차전 승리투수이자 MVP 장원삼(오른쪽)과 박석민(왼쪽) 등 삼성 선수들이 28일 KS 4차전 패배 뒤 더그아웃을 빠져나가고 있다.(사진=삼성 라이온즈)
반면 두산은 한번 찾아온 기회를 제대로 물었다. 4차전만 봐도 삼성과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두산은 1회 배영수의 난조를 놓치지 않았다. 1사 후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성공시키자 배영수는 김현수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이후 최준석에게도 볼 3개를 연이어 던졌다. 여기까지는 삼성의 3회말과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최준석은 스트라이크 1개를 지켜본 뒤 다음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카운트를 잡기 위해 몸쪽 밋밋하게 들어온 직구를 잡아당겨 좌월 1타점 2루타를 만들었다.
최준석의 침착한 한방은 이후 오재일의 고의 4구와 양의지의 1타점 희생타로 연결됐다. 삼성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끝났다.
류중일 감독은 "정규리그 후 3주 훈련 동안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 등 중심타자들의 컨디션이 좋았다"면서 "자신이 있어서인지 스윙이 커졌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이어 "대반전을 이룰 다른 카드를 빼들겠다"고도 했다.
과연 풀 죽은 삼성의 방망이가 곧추세워질 수 있을지, 일단은 상대 투수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