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리역
갑자기, 뜬금없이, 홀연히 강원도로 또는 동해로 떠났다면 그건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거나 무언가가 잘 안 풀리고 있다는 징후다.
하기야 인생이 어디 마루 넘은 수레처럼 쉬이 굴러가던가.
산다는 것은 끌탕의 연속이고 지뢰밭 통과하기며, 제대로 벼려진 칼을 타는 것.
어쨌든 일상의 갑갑증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할 때 많은 이들이 강원도를 떠올리는 듯하다.
▶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 우리의 애마가 시동을 끄고 자리를 잡은 곳은 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의 구절리역 앞. 역은 그야말로 볼품없이 초라하다.
구절리역이라 쓰여진 조그만 팻말은 땅에 곤두박질 처져 있고 매표 직원도 검표 직원도 없다. 아, 그래도 좋다. 왜냐면 그건 하나의 아이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산골마을의 간이역에서 무얼 하겠다는, 무얼 보겠다는 그런 욕심은 없다. 그저 치열한 삶에서 한 발짝 비켜나 정적과 관조의 이미지에 몸과 마음을 부리고 싶었고 그 대상이 이와 같은 박소한 역인 것이다.
열차가 들어선다.
국내 유일의 완행열차 비둘기호다. 정선읍에서 이곳 구절리까지 다니는 데 객차라고 해봤자 달랑 한 량이다.
이 미니열차는 주로 학생들의 통학을 위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주말이면 관광객 차지가 돼 버렸다고 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싶어 하는 이가 나 뿐만은 아닌 것이다.
하루 먼저 정선으로 출발해 이른 아침 해장국으로 속을 채우고 이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예서 만나기로 약조를 한 이가 내린다.
하루 밤 사이에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이 가지런해질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정갈한 얼굴이다. 적이 안심이 된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역을 빠져나가고 곧고 길게 뻗은 철로를 바라본다.
인생의 철길에서 탈선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 평화롭고 느긋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종착역에 도달하는 비둘기호처럼 끈기와 뚝심 있게 운신해야겠다는 생각, 누군가의 고단한 마음을 싣고 타박타박 걸어가 주고 싶다는 생각 등으로 머리가 잠시 어지럽다.
오장폭포
▶ '공맹의 기상을 받잡고' = 다소 무거워진 머릿속에 박하향을 퍼뜨린 것은 오장폭포다.
구절리역에서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오장폭포는 노추산의 연봉인 오장산 자락을 흐르던 물이 갑자기 100m에 가까운 돌벼랑을 만나 수직으로 떨어진다.
하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바로 물이 내려오는 듯 신비감마저 든다. 경사길이 209m에 수직높이 127m로 겨울철에는 빙벽을 타는 사람들도 많이 다녀간단다.
정선은 하늘이 빚어 놓은 험준한 산들이 고을마다 둘러싸고 있다.
웬만한 장정 한 사람이 고개만 지키면 외적의 침입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농만은 아닌 듯하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정선에서 북평면으로 넘어가는 반점고개에는 기념비 만세성도가 우뚝 서있다.
정감록은 정선의 십승지를 꼽아 놓았다. 상원산 동남쪽 일대로 북면 여량리와 유천리, 구절리, 봉정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유천리는 구절리 입구 마을로 패가가 없는 부유한 동네이며, 봉정리는 임계면으로 넘어가는 중간지대로 반륜산이 버티고 서서 속세의 구정물을 막고 있다.
노추산
구절리에는 노추산이 있다.
형세로 보면 상원산이 안산으로 가마솥처럼 버티고 서서 구절리의 지기가 누설되는 것을 막고 있다.
마을 토박이들은 예부터 노추산 아래 만인활거지지(萬人活居之地)가 있다고 했는데 구절리가 그곳이라고,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춘 승지 중의 승지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노추산은 정선군 북면과 강릉시 왕산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데, 동쪽에 이웃한 사달산과 더불어 이름이 특이하다.
전설에 의하면 사달산에서 네 명의 득도자가 나올 것이라 하여 그렇게 불려졌는데 이제까지 설총, 의상, 율곡이 이 산에서 득도했고 아직 한명이 더 남았다고 한다.
반면 노추산이란 이름은 설총이 중국의 노(魯)나라와 추(鄒)나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 중국 노나라 공자와 추나라 맹자의 기상이 서려있다 하여 노추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이 노추산에서 신라 때의 설총과 조선시대의 율곡 선생이 학문을 쌓아 대성했는데, 산 중턱에 두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이성대가 있다.
노추산으로 오르는 길은 모두 네 곳. 강릉 방면에서는 왕산면 대기1리 늘막골과 고단2리 덕우산 샘터에서 들어가 새목재로 오르는 길이 있으며, 정선에서는 북면 구절리 종량동과 중동에서 탈 수 있다.
그 중 종량동에서 오르는 길을 택해 산행을 시작하는데, 길이 아주 험하지 않아 비교적 부담이 없다. 자갈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좀 가다 보면 폐광터와 약수터를 만나게 된다. {RELNEWS:right}
산행이 처음인지라 험로가 아님에도 온몸이 땀범벅이다.
결국 1322m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고 950m 지점에서 숨을 고르고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한걸음이다.
얼른 내려가서 찬물로 땀과 더위를 훔치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에 서린 공맹의 기상을 받아 심신이 가뿐해진 탓은 아닐까.
모름지기 두 성현께서 인생이든 산이든 그렇게 조급하게 몰아가라고 가르침을 내리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