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말보로 와인
흔히 와인하면 무조건 반사적으로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맛있는 포도주가 콧대 높은 불란서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조그만 관심을 기울이면 '프랑스산'에 못지않은 준수한 와인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화이트 와인의 경우 뉴질랜드를 빼놓을 수 없다. 뉴질랜드에서도 화이트 와인의 본향으로 이름 높은 곳이 바로 말보로 지역이다.
뉴질랜드는 신흥 와인의 강국으로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실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한 영국인들은 와인보다 맥주를 즐겼다. 이곳에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60년대의 일. 기후의 유사성 때문에 초기에는 독일의 대표적인 포도 품종인 뮐러-투르가우(Muller-Thurgau)가 많이 심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품목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소비뇽으로 화이트 와인을 빚는 양조 지역은 비교적 넓게 분포돼 있는데, 와인의 본류인 프랑스에서는 보르도, 르와르, 랑그독 그리고 부르고뉴와 론 지방 등을 들 수 있다. 프랑스 이외의 지역으로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더불어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뉴질랜드에는 14개의 주요 와인 생산지역이 있다. 소비뇽 블랑의 말로보를 비롯해 샤도네이로 유명한 기스본, 프리미엄급 레드 와인이 많이 나는 혹스 베이, 피노누아 재배의 최적지 마틴버러, 독일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센트랄 오타고 등을 중심으로 모두 300여개가 넘는 와이너리들이 포진해 있다.
화이트 와인이 강세를 띠어 전체 품종의 70%에 육박한다.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상당 기간 샤도네이가 주종을 이뤘지만 소비뇽 블랑의 강력한 추격을 받는 형국인데, 말보로에서는 이미 소비뇽 블랑이 추월한 상태다.
와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말보로를 이야기하자.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말보로는 뉴질랜드 남섬의 동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북섬의 웰링턴을 기준 삼으면 서쪽 방향이다. 말보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뉴질랜드 최대의 포도 재배지이자 와인 제조 지역이다.
뉴질랜드 포도농장
65개의 포도주 양조장과 290군데의 포도 농장이 있고, 재배 면적만도 4054ha 이른다. 뉴질랜드 전체의 포도 재배 면적이 8200ha란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앞서 언급했던 바 말보로의 소비뇽 블랑은 이미 국제적인 지명도가 상당한 수준이다.
1973년부터 소비뇽 블랑을 재배하기 시작해 1980년대 이후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수상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배수가 잘 되는 자갈이 많은 토양과 장시간 태양이 있으면서도 밤에는 서늘하기 때문에 농축되고 잘 익은 신선함이 느껴지는 포도로 만든 와인을 생산하기에 이상적이다.
소비뇽 블랑은 신선한 향과 맛을 보존하기 위해 포도를 따는 시기도 다른 품종에 비해 이른 편이며 저온에서 발효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오크통을 이용한 발효방법은 이 포도 품종에는 부담스럽다. 향은 비교적 강한 편이어서 야외에서 식사할 때도 제격이며, 청량감 때문에 알코올의 느낌도 덜 난다. 그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다이어트용으로 불티가 난다고 한다.
각종 해산물과 닭고기 그리고 채소와 과일을 곁들인 음식에 잘 어울린다. 물론 장기 보관하는 소비뇽 블랑도 있지만, 3~4년이 지나면 맛과 향을 잃어 가기 때문에 오래 묵혀두지 않고 바로 마시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말로보에서 소비뇽 블랑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인트 와인의 양대 축인 샤도네이와 멜로, 피노누아 등의 레드 와인도 추천할 만하다.
말보로 와인
'포도의 제왕' 말보로에서도 핵심 지역을 고르라면 당연히 블렌하임(Blenheim)의 몫이다. 인구 2만의 소도시인 블렌하임은 15킬로미터 이내에 25개 이상의 포도농장이 밀집해 있는, 그야말로 '포도의, 포도에 의한, 포도를 위한' 땅이다. 당연히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포도농장이 와인 시음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개성 만점의 레스토랑과 와인 제조 및 농장 견학 코스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와인 양조장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와 몬타나(Montana). 1985년 설립된 클라우디 베이는 연간 15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전통적인 와인 제조 공정과 현대적인 기법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열며,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와인 제조 시설을 견학할 수 있다. 몬타나는 블렌하임을 넘어 뉴질랜드 최대의 와인 양조장으로 양명한 곳이다. 다섯 종류의 화이트 와인과 세 종류의 레드 와인 품종을 주로 생산하는데, 역시 '베스트 셀러'는 예의 소비뇽 블랑이다.
매시 30분마다 와인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몬타나는 물론이고 뉴질랜드 와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살뜰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몬타나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몬타니악 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블렌하임에서 와인의 멋과 향에 흠뻑 취했다면, 픽턴(Picton)으로 이동할 차례다. 포도와 함께 말보로의 상징인 말보로 사운드(Marlborough Sounds)를 만나기 위해서다.
사운드는 구불구불한 좁은 만을 지칭하는 말로 노르웨이어로는 피오르드다. 와인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기 전의 말보로는 제비갈매기와 유럽 쇠가마우지, 블루 펭귄, 돌고래, 바다표범 등의 각종 조류와 바다 생물의 고향으로 더 유명했다. {RELNEWS:right}
말보로는 퀸 샤로트 사운드, 케네푸루 사운드, 펠로러스 사운드 등 3개 수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픽턴에서 크루즈에 승선하면 3시간가량 사운드를 탐험하게 된다.
'신은 5일간 지구의 다른 모든 것을 만들고 하루 동안 이곳을 창조했다'는 격찬을 듣는 남섬의 밀포드 사운드에 비하면 웅장함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푸른 물살을 가르며 유람선이 나아감에 따라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해무에 싸인 사운드의 풍경이 흡사 '몽유도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1시간 정도 진출하면 맹렬한 속도로 유람선 뒤를 좇는 일군의 돌고래들도 만날 수 있다.
배는 중간 중간 조그만 섬들에 정박하게 되는데, 각 섬에는 청정한 자연과 어울린 낭만적인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섬에서는 카약이나 수영 등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트레킹 코스가 따로 마련돼 있어 색다른 말보로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