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A 대학교에 다니는 문모(22)씨는 최근까지도 수업과 수업 사이 빈 시간을 주로 학교 앞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보냈다. 그마저도 한 잔에 4천∼5천원 하는 커피 값이 부담돼 학교 안 벤치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수업에 들어가는 날이 더 많았다.
여학생 전용 휴게실이 각 단과대학 건물마다 마련돼 있는 것과 달리 남학생만을 위한 휴식 공간은 학교 안에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13일 "몸이 아픈 날에는 잠깐 눈 붙일 공간이 없어 벤치에 누워 있거나 빈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했다"고 입을 삐죽거렸다.
문씨가 다니는 A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달 남학생 전용 휴게실을 마련했다. 학교 측과 맺은 협약서에 따라 흡연실 등으로 사용되던 자투리 공간을 리모델링해 남학생만을 위한 휴식 공간을 따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매트리스가 깔린 침대에 이불과 베개까지 갖춘 여학생 전용 휴게실과 달리 남학생 휴게실은 소파 3개와 의자 겸용 간이침대 3개가 전부다. 크기도 여학생 휴게실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 학교의 여학생 휴게실은 모두 5곳이다. 일부는 복층구조이며 주기적으로 청소 등 관리하는 근로 장학생도 따로 두고 있다. 내부에는 휴대전화 충전기와 화장대도 갖췄으며 시험기간에는 밤새 공부를 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된다.
이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4)씨는 "남학생 전용 휴게실을 기껏 만들어놨는데 침대가 부족하고 공간이 협소해 휴게실에 들어왔다가 되돌아가는 학생이 많다"며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사실상 휴게실로 볼 수도 없는 수준"이라고 불평했다.
그나마 남학생 휴게실을 만든 이 학교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부분 대학이 남학생 휴게실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인천 지역의 다른 4년제 B 대학교도 온돌 패널이 바닥에 깔린 여학생 전용 휴게실 7곳을 마련했지만, 남학생 전용 휴게실은 1곳도 만들지 않았다. 인천 지역 나머지 대학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대학의 한 관계자는 "여학생들은 생리 등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따로 배려해야 하지만 남학생 전용 휴게실이라는 개념 자체는 조금 웃기다"며 "자판기 등이 있는 휴게실은 많은데 굳이 따로 남학생 휴게실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남학생 휴게실 설치 문제는 여러 대학에서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다. 남학생들은 '남성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전용 휴게실을 만들어 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대학 총학생회가 남학생 전용 휴게실을 학내 복지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했다.
최근 서울 소재 대학들도 잇따라 남학생 휴게실을 마련하는 추세다. 고려대·경희대·성균관대 등이 최근 남학생 전용 휴게실을 만들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남학생 전용 휴게실 문제를 성별 논란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A 대학 재학생 최모(26)씨는 "생리 등으로 인해 여학생들을 위한 휴게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여학생 휴게 공간을 줄여 남학생 휴게실을 만들 게 아니라 따로 공간을 내 남학생 휴게실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대학은 남학생 전용 휴게실 설치에 공감하면서도 학내 공간 부족 문제와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인천의 한 대학 관계자는 "총학생회가 남학생 휴게실을 만들어 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대학이 공간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며 "강의실도 부족한 형편이라 남학생 휴게실을 따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남학생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음주를 하는 등 관리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면서도 "앞으로는 대학 내 남학생 휴게실이 더 늘어야 하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