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쏟아부은 정부자금이 천문학적 수준이다. 주말 대형마트 개점금지 등 각종 규제책까지 내놨다. 과연 전통시장은 살아나고 있을까. 남대문시장 상인에게 '유통규제책의 성과'에 대해 물었다. 상인의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했다. "도움 될리 있겠는가."
썰렁한 전통시장과는 분위기가 다른 곳이 있다. 안경ㆍ그릇ㆍ액세서리ㆍ카메라 등 업종 불문 도매상점에 생활잡화, 화장품 가게까지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 먹거리도 풍부하다. 2대째 내려오는 칼국수집에서부터 핫바ㆍ호떡집까지, 요즘엔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도 곳곳에 있다. 볼거리ㆍ먹거리ㆍ살거리까지 가득한 명실상부 국내 최대 전통시장 남대문시장 얘기다.
그렇다면 이곳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경기 체감도는 어떨까. 11월 13일 저녁 6시 남대문시장의 한 속옷 가게에 들러 "요즘 장사가 잘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상인은 손사래부터 친다. "장사가 잘 되기는 무슨. 요즘에는 리어카 상인들도 오후 8시면 장사를 접어요. 알다시피 요즘은 엔저 때문에 일본 손님이 확 줄었어. 그나마 인도 관광객이 조금 늘긴 했는데, 싼 거밖에 안 찾아요."
"대형마트 규제가 시장에 도움이 되는 것 같냐"고 질문에는 "전혀 도움 안 되지"라며 말을 이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작은 상점을 하나 운영하려면 월 150만~200만원을 임대료로 내야돼. 리어카 상인들은 돈을 안 내고 장사하잖아. 이런 것들이나 좀 해결해줬으면 좋겠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규제책이 정작 재래상인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탄이다. 그렇다면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는 리어카 상인의 사정은 괜찮을까. 남대문시장 초입에서 만난 리어카 상인은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장사가 잘 될 턱이 있나요. 시청이며 구청이며 허구한 날 단속을 나오는 통에 살 수가 없어.
남대문시장에 별 세개 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야. 한번 걸리면 200만~300만원씩은 기본이라구. 짝퉁을 파는 게 옳다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단속이 너무 심하다는 거야. 한국 사람이 오지 않으니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브랜드 로고가 없으면 사질 않아. 경기는 불황이고 팔 만한 건 못 팔게 하니까 어려울 수밖에." 대형마트를 규제하든 그렇지 않든 재래시장 상인의 걱정은 다른 데 있는 듯했다. 25년 동안 칼국수를 팔았다는 상인 역시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 "도움될 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상인은 "한국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이나 오지 젊은 사람들은 찾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주차시설도 빈약한 데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니 나 같아도 오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남대문시장의 복판에서 과일을 파는 한 상인에게 전통시장이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일단 가로등부터 설치해줬으면 좋겠어요. 오후 8시만 되면 깜깜해져. 어두우니까 밤에는 손님들이 안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전통시장이라는 데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다니까." 또 다른 상인은 "외국인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라며 "관광객 덕분에 먹고사는 데 그마저도 미래를 알 수 없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RELNEWS:right}
상인들의 눈에 비친 남대문시장의 현주소다. 국내 최대 전통시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남대문시장의 편의시설은 낙후돼 있을 뿐만 아니라 미로 같은 통로, 주차난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든 말든 소비자가 남대문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다.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는 비책, 다시 한번 검토해 볼 때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