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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대의 아픔과 타락이 시국미사를 부른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미사가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22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은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행했다.

    이 시국미사는 대통령 사퇴 요구와 강론 중에 등장한 연평도, 천안함 발언으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보수단체 뿐 아니라 청와대에 국방부까지 나서서 사제단을 비난하는가 하면 민주당도 사제단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대선 부정과 관련한 강론 중에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연평도.천안함 문제는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었겠다 싶다. 결과적으로 시국미사가 폄훼당할 빌미를 제공했다. 다만 준비된 성명이 아닌 강론 말미에 최근의 종북몰이를 언급하며 나온 것이어서 강론 신부의 개인적 언급일 수도 있다.

    ◈ 기도와 미사가 성당 밖으로 나온 까닭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참여를 두고 언론들이 보도한 내용은 단발적이고 부분적이어서 전체 상황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1) 천주교에서는 대선 부정.불법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직별로 시국기도회, 시국선언, 시국미사 등을 벌였으며 전국으로 확산되어 왔다. 천주교 측의 최초 시국선언은 지난 6월 25일 평신도단체와 수도자 단체들이 함께 국정원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이어 7월에 부산교구 사제단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전국 15개 교구에서 사제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이 등장하지 않은 교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군종교구. 그리고 시국기도회, 시국미사가 이어졌다.

    시국미사는 인천.수원.부산.청주.광주 등에서 계속 되었으며 보수적 성향의 대구대교구도 지난 8월 출범 102년 만에 시국선언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운동은 9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를 열고 국정원 해체를 촉구하면서 일단락되었다.

    2) 천주교 사제들 가운데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만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아니다. 시국선언을 시작한 것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평신도 단체들과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와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등이다.

    천주교 평신도들은 이후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다시 ‘민주화를 위한 천주교행동’(가칭)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상시적인 조직화를 준비하고 있다. 목표는 국가기관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특검 요구이다. 평신도들의 묵주기도봉헌운동도 계속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사제단이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연 시국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도 12월 8일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을 앞두고 미리 발표한 담화문에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비판한다.

    "정보기관과 경찰, 그리고 군대 등 국가의 권력기구를 시민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본질이다. 국가권력이 법률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한계를 넘어선다면, 권력은 그것 자체로 불법이며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침해일 따름이다."

    물론 천주교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서울대교구 염수정 대주교가 사제들의 직접적인 정치개입을 경고한 것처럼 전체 주교회의나 대주교들의 입장이 사제단과 다를 수 있다. 또 천주교 내에도 한국천주교 나라사랑기도회 등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조직들이 있다.

    ◈ 시대의 아픔과 타락이 시국 미사를 부른다

    시국미사에서 대통령 사퇴를 언급하게 된 경위는 전주 교구 송년홍 신부 발언에서 설명되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기다려 왔는데 더는 주저할 수 없다. 재판이 진행 중이니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팀장을 배제하는 등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모습에 사퇴를 요구하기로 했다.”

    사제단은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1. 제대로 조사하라. 제대로 조사 못할 자들을 직무에서 배제시켜라, 증거조작과 인멸을 꾀한 자들을 처벌하라, 여론조작을 중단하라.
    2.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의 총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
    3. 대통령은 정의롭고 공정한 진상규명을 통해서 책임자를 처벌하라.
    4. 이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사퇴를 표명하라.

    1, 2, 3 항의 요구와 마지막 4항의 요구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날 거면 별도의 사과는 필요하지 않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대통령 사퇴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맡길 일이다. 결국 여기서의 대통령 사퇴 요구는 그만큼 엄중한 질책임을 강조하는 선언적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정의구현 사제단의 대통령 퇴진 요구는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와 사제단이 충돌한 사건은 2004년 6월 이라크 파병 문제였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재건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제단은 이라크 재건을 돕고 재건과정에서 국익을 도모하려면 민간 평화재건단을 꾸려 보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지배에 동조하는 형태로 군부대를 보낼 수 없으며 결국 한국인에 대한 보복테러로 되돌아오지 않느냐며 대통령을 질타했다.

    신부들은 단식농성과 미국 대사관 앞 촛불집회를 진행했고 결국 정권퇴진 구호가 등장했다. 그 때 사제단은 "문제제기이자 일종의 경고 차원에서 정권퇴진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사퇴할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2004년 당시에 반미종북 논란 같은 것은 없었다.

    국익을 위한 이라크 파병과 정권연장을 위한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개입 ....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심각한 국가적 현안이자 정치적 책임이 무거운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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