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람바다' 왕년의 씨름스타 박광덕이 3일 씨름 왕중왕전 첫날 스타씨름대전에서 예전 천하장사 황대웅(붉은 바지)을 들어넘기고 있다.(화순=대한씨름협회)
'2013 씨름 왕중왕전'이 열린 3일 전남 화순 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 대학과 일반을 통합해 2013년을 마무리하며 4일 동안 열리는 이번 대회 첫 날 순서는 '레전드 올스타전' 격인 스타씨름대전이었다.
8, 90년대 씨름 황금기와 2000년대 중흥기를 이끈 뒤 은퇴한 왕년의 스타들과 현역 최고의 선수들이 단체전에 나섰다. 당초 씨름 부흥을 위해 대한씨름협회가 여름부터 일찌감치 추진한 대회였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승부 조작 사태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씨름인들이 다시금 각성하는 계기도 마련됐다. 경기에 앞서 협회와 각 팀 선수, 감독, 관계자들이 자정결의대회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반성하고 향후 깨끗한 승부를 다짐했다.
그래선지 이벤트 행사였지만 승부는 자못 팽팽했다. 특히 은퇴한 장사들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며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는 자존심을 세웠다.
첫 판에 나선 이승삼 창원시청 감독(52)은 손상주 협회 전무이사(51)와 민속씨름 초창기 스타 맞대결에서 지천명의 나이에도 뒤집기를 선보이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록 기술 뒤 허리를 부여잡긴 했지만 씨름팬의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90년대 스타 박광덕(41)은 천하장사 출신 '불곰' 황대웅(46)을 눕히고 음악에 맞춰 전매특허인 '람바다' 춤 세리머니를 펼치며 웃음을 자아냈다. 한라급의 강자 김용대(37)와 이기수(46)도 잡채기, 뒤집기 등 현역 못지 않은 '기술 씨름'의 진수를 선보였다.
그 중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대결은 이태현 용인대 감독(37), 황규연 현대삼호중공업 코치(38)의 절친 대결. 가장 최근까지도 선수 생활을 했던 만큼 경기력이 살아 있었다. 결과는 올해 초 은퇴한 황코치의 우세. 이태현의 장기인 들배지기에 둘째 판을 내줬지만 잇딴 되치기로 2-1 승리를 따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이만기 인제대 교수(50)는 "(선배들이 저 나이에도) 잘 한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어 '한번 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미쳤나"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교수는 이날 중계방송 해설을 맡아 출전하지 못했다.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협회 기술위원장(56)과 '인간 기중기' 이봉걸 장사(56)은 이날 각각 청룡, 백호팀 감독을 맡았다.
원로 씨름팬 이명식(73, 전남 화순) 씨는 "원래 씨름을 좋아해서 찾아왔다"면서 "예전 인기 있던 때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고 기뻐했다. 이어 "이승삼, 손상주가 나이 먹고도 잘 한다"면서 박수를 보냈다.
이날 급우들과 함께 관전한 김택균(화순 오성초 4학년) 군은 "처음 씨름을 직접 봤는데 선수들이 힘차게 넘어뜨리는 게 재미있고 스릴이 있다"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같은 반 양선모 군도 "잡채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만 이들은 "이만기와 강호동은 들어봤는데 현재 다른 선수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간신히 민속 스포츠로서 명맥을 잇고 있는 씨름. 과연 올드 팬들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국민 스포츠로 부활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