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제 스스로에게 질문해봅니다. 만약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고 슬픔에 젖어 한탄만 한다면, 모든 것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로 생각해 원하는 바를 분명히 표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교황 프란치스코가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 유명한 종교전문기자 프란체스크 암브로게티, 세르히오 루빈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와 이들이 2년에 걸쳐 한 인터뷰를 실은 대담집 '교황 프란치스코'(RHK 펴냄)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2010년 아르헨티나에서 초판이 출간됐다가 올해 교황 즉위를 기념해 재출간되면서 20여개국에서 번역된 화제작이다.
이 책에서 교황은 가톨릭 수장이 아니라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라는 한 인간의 삶과 깨달음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조부모 사진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 중학교 시절 모습, 빈민촌 봉사, 세족식,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2000년 5월의 아르헨티나를 일깨운 테데움 강론 현장 등의 사진도 실렸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는 국가 시스템이 '불신의 그림자'라는 큰 그늘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약속과 발표는 장례행렬과 같이 공허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망자의 일가친척만을 위로할 뿐 막상 아무도 죽어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1부 '가족의 탄생'은 교황의 조부모가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교황은 중학교 때 아버지의 권유로 화학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의 신성함을 몸으로 깨달았다. 이는 교황이 견지하는 노동에 대한 신념으로 이어진다.
"교회는 항상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 노동이라고 지적해왔습니다. 일하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오늘날 많은 경우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중략)..모든 것의 중심이 이익을 내는 것이나 자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겁니다."
청춘에 대한 교황의 발언은 한국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고려대생 주현우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와 맞물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교황은 "젊을 때는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부 '믿음의 봄'에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고 3부 '살아있는 가톨릭'에선 이 시대 종교의 역할에 관한 신념이, 4부 '사랑 그리고 만남'에서는 사회를 망치는 소통의 부재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 담겼다.{RELNEWS:right}
5부 '희망의 증거'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에 의한 불법체포, 고문과 행방불명 등 극한 상황에서 교회가 침묵했다는 의혹에 관해 소상하게 밝힌다.
지금까지 공개석상에서 독재정권 말기 본인의 활동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교황은 이 책에서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관련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인권보호를 위해 일했던 교황의 숨은 노력이 드러나 있다.
아르헨티나의 랍비 아브라함 스코르카는 서문에서 "이 책은 예수회 신부라 부르기보다는 자신과 좁은 길을 함께 걷는 모든 사람들, 특히 자신의 양떼인 신자들을 이끌고 믿음을 전파하는 '목자'라고 부르고 싶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생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한다.
교황 프란치스코 지음. 이유숙 옮김. 328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