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베들레헴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25일(현지시간) 오전부터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수천 명의 인파 속에 미사가 열리는 등 지구촌 곳곳이 성탄절을 맞아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이슬람권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 등 일부 아랍 국가에서도 성탄절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는 혹독한 겨울 폭풍에 사상자가 속출하고 수십만 가구에 전기가 끊기는 등 추위 속에서 힘겨운 성탄절을 맞았다.
◇베들레헴·바티칸에 인파 운집…성탄 축하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서안지구 베들레헴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수천명의 인파가 운집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AFP 통신과 BBC 방송에 따르면 구유 광장(Manger Square)에는 여행객들이 빼곡히 모여들어 축제 분위기를 이뤘다.
광장에는 거대한 산타 모형이 세워졌으며 지척의 예수탄생교회(Church of the Nativity)에는 촛불을 켠 동굴이 마련돼 예수가 태어났다고 기록된 지점을 알렸다.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콘크리트로 세워둔 분리장벽에는 성탄절을 맞아 출입문 세 개가 개방됐다. 이 문으로 파우드 트왈 예루살렘 총대주교가 이끄는 성탄축하 행렬이 베들레헴으로 들어갔다.
트왈 총대주교는 베들레헴에 당도해 자동차로 천천히 행진을 벌이며 좁은 거리에 들어찬 인파와 성탄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곳 성지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의 내전과 필리핀의 태풍피해, 이집트와 이라크의 어려운 상황과 시리아의 비극까지 세계의 모든 어려움을 기억한다"며 "성탄의 메시지는 희망과 사랑과 형제애의 메시지이며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정에 열린 미사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도 참석했다. 트왈 총대주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해묵은 갈등에 '공정하고 공평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첫 성탄 전야 미사를 드린 바티칸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신도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성탄을 함께 축하했다.
광장 복판에는 실물 크기로 예수 탄생 장면을 재연한 설치물이 공개됐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도 성탄 메시지를 준비했다.
여왕은 사전 녹화한 메시지에서 "잠시 쉬면서 삶을 점검할 수 있도록 삶을 방해하는 많은 것을 잊는 게 낫다"면서 행동과 성찰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
여왕은 올해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 빈 사이에 조지 왕자가 태어난 것에 대해 "모두에게 새로운 행복과 희망의 미래를 생각할 기회가 됐다"고 했다.
성탄 메시지는 여왕이 왕실 가족과 성탄 예배를 드린 후 라디오와 TV로 방송된다. 왕실의 성탄 메시지는 1932년 조지 5세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북미·유럽선 겨울 폭풍에 사상자 속출…'힘겨운 성탄절'
북부 미드웨스트와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눈폭풍이 몰아친 미국에서는 14명이 숨지고 50만이 넘는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어지는 등 축하할 여유도 없이 힘겨운 성탄을 맞았다.
AP 통신에 따르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전기가 나간 집들을 위해 임시 대피소를 열어뒀다. 상당수 주민이 성탄절을 임시 대피소에서 맞게 된 셈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토론토 동북쪽 마을에서도 전기가 나간 집에서 가스 발전기를 사용했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2명이 사망했다.
토론토에서는 24일 현재 추위 경보가 내린 와중에 9만 가구에 전기가 끊겨 있는 상태다.
유럽도 겨울 폭풍에 괴로운 성탄절이긴 마찬가지다. 수십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안 되고 있고 일부 지역은 성탄절 당일까지도 복구가 어려운 형편이다.
영국에서만 4명이 목숨을 잃었고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도 12살짜리 소년이 건설 자재에 깔린 채 추위와 싸우다 숨졌다.
산사태와 홍수로 철도 운행이 줄거나 취소돼 성탄절 휴가를 떠나려던 수천 명도 피해를 봤다. 파리에서도 여행을 계획했던 시민의 발이 묶였다.
런던의 개트윅 공항에서는 인근 강이 폭우로 넘쳐 전기가 끊어지는 바람에 26편의 항공편 운항이 취소되고 이착륙이 잇따라 지연됐다.
스페인에서도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을 덮친 강풍에 나무가 쓰러져 통근 열차가 탈선하는 등 궂은 날씨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
중동의 '허브'로 불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이슬람 수니파 '인구 대국'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는 쇼핑센터와 대형 상점, 공연장 등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됐다.
두바이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가로수에 인공 눈을 뿌리고 눈사람 모형의 조각에 흰색으로 칠하는 등 겨울 분위기를 한껏 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두바이는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고 AP는 분석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이슬람교도가 기독교인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건네고 꽃다발과 장난감 등의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