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낮 12시43분께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에 위치한 롯데카드 센터.
사람 사이를 간신히 뚫고 뽑은 대기 순번표에 적힌 대기인 수는 무려 '530명'이었다. 롯데카드 직원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되느냐고 묻자 "오후 5∼6시는 넘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에 한 고객은 "지금 카드 재발급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서 어떻게 기다리느냐"며 "카드사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사람이 이렇게 몰려드는데 안내 인원을 늘려야지 혼잡스럽게 방치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화를 냈다.
사상 최악의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건의 피해 사실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뒤 맞은 첫 영업일인 이날, 은행·카드사 지점들은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카드를 재발급 받으려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객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롯데카드 측은 "집으로 돌아가서 전화나 홈페이지로 신청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한 노인 고객은 "나이 든 사람들은 인터넷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홈페이지로 신청하라는 것이냐. 콜센터로 전화했더니 받지도 않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피해자가 "기다리는 사이에 사고가 나면 어떡하느냐"고 따지자 직원은 "카드사에서 다 보상해드린다. 오늘 롯데카드 사장님도 말씀하셨다"고 달랬다.
소공동 롯데카드 센터에 배치된 카드 재발급 인력은 8명.
밀려드는 고객을 직원들이 감당하지 못해 대기인이 너무 많아지자 롯데카드 측은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주면 우리가 전화를 드려서 카드를 재발급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언성을 높이던 한 피해자는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못 돌아가겠다. 우리 아파트에는 집단소송하자는 안내문도 붙었다. 내가 확인해보니 자동차 보유 대수, 주거 형태, 계좌번호까지 다 나갔다. 사고가 나든 안 나든 기분 나쁘고 찜찜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롯데카드 최문석 팀장은 "고객 대면 창구인 카드센터가 31곳으로 은행 창구에 비해 적어 특히 더 붐비는 것 같다"며 "평소에는 카드센터를 오후 6시까지 운영하지만 센터별로 상황에 따라 연장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KB국민카드나 NH농협카드의 고객들도 카드를 재발급받기 위해 은행 지점을 찾았다.
은행이 따로 없는 롯데카드와 달리 국민카드나 농협카드는 고객이 은행을 이용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는 덜 붐볐지만 평소보다는 고객이 훨씬 많았다.
이날 오후 1시께 농협은행 태평로 지점에서는 카드를 재발급받으려는 고객들이 몰리면서 30여명이 대기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원 김모(46)씨도 불안한 마음에 카드를 다시 발급받고자 직장 주변에 있는 이 지점을 찾았으나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같은 시간 국민은행 서여의도영업부에는 대기인이 40명 정도 있었다.
은행 입구에서는 한 남성 직원이 고객정보 유출 사실과 은행·카드사가 취한 조치 등을 알리는 '고객정보 유출 대고객 안내문'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 직원은 "평소에는 대기인이 1∼2명이고, 많아 봐야 10명"이라며 "지금 여기 있는 고객의 90% 정도는 이번 사고 때문에 카드를 재발급 받으러 오셨다"고 설명했다.
이 지점에 놓여있는 두 대의 고객용 컴퓨터 앞에는 자신의 고객정보 피해 사실을 확인해보려는 고객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표를 받아든 김모(59·여)씨와 한 60대 여성은 서로 초면인데도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이번에 (정보가) 털렸다고 한다", "찜찜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등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김씨는 약 20분을 기다린 끝에 순서가 돌아왔다.
신용카드를 재발급해달라는 김씨에게 창구 직원은 간단한 사실 확인을 거친 뒤 "재발급까지는 필요 없다"고 안내했지만, 김씨는 "그래도 재발급해달라"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은 인터넷 뱅킹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번 정보 유출 사고의 여파인 줄 알고 은행을 찾았지만, 보안카드의 사소한 문제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 조치를 취한 뒤 은행을 떠났다.
오후 1시30분께 국민은행 명동영업부의 대기인수는 66명에 달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오늘 영업은 4시까지지만, 이후에도 문을 닫지 않을테니 퇴근하고 방문하셔도 재발급해드리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