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자료사진)
이규혁(36, 서울시청)의 마지막 올림픽이 끝났다. 19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을 통해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뒤 올림픽과 함께 보낸 시간만 20년. 레이스가 끝나자 이규혁은 관중석들의 환호와 함께 마지막 올림픽을 즐겼다.
이규혁은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드 아레나에서 열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10초0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미 이규혁에게 기록은 큰 의미가 없었다.
6조에서 이고르 보골류브스키(러시아)와 레이스를 펼친 이규혁은 마지막 레이스인 만큼 이를 악물로 얼음판을 지쳤다. 순위는 이미 메달권과 거리가 있었지만 보골류브스키에 2초81이나 앞서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1991년 13살의 나이로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규혁은 그야말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영웅이었다. 선후배들이 대표팀을 거쳐가는 동안 이규혁은 대표팀을 지켰다. 1997년에는 1,000m 세계기록(1분10초42)를 세웠고, 2001년에는 1,500m에서도 세계기록(1분45초20)을 썼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종합 우승 네 차례를 비롯해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14번이나 우승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이상화(25, 서울시청), 모태범(25, 대한항공), 이승훈(26, 대한항공)도 이규혁의 등을 보면서 자랐고, 이번 대회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 미헐 뮐더르(네덜란드)는 이규혁을 영웅으로 꼽을 정도.
그런 이규혁에게 없는 것이 바로 올림픽 메달이었다. 이규혁은 앞선 5차례 올림픽에서 항상 메달 후보였지만, 끝내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인 6번째 올림픽. 이규혁은 일찌감치 메달 욕심을 버렸다. 30대 중반의 나이 탓에 사실 더 이상 메달을 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규혁은 4년간 누구 못지 않은 땀을 흘리면서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다. 결과를 떠나 도전 자체를 즐겼다.
물론 올림픽 메달은 이규혁에게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규혁은 "올림픽 메달 때문에 항상 부족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약간 부족한 선수로 마감하는 것 같다. 반면에 올림픽이라는 대회 때문에 많이 배웠고, 선수로서 성숙할 수 있었다"면서 "약간은 부족한 스케이트 선수로 살아가겠지만, 그걸 채우기 위해 열심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기쁜 것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슬픈 것은 이제는 선수로서 스케이트를 못 탄다는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