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독립광장에서 18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대와 진압경찰간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진 가운데 시위자들이 타이어로 바이케이드를 쌓아 불을 지르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 키예프 시내에서 18일(현지시간) 벌어진 야권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충돌로 양측에서 2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우크라이나 정정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이날 충돌은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야권의 반정부 시위 이후는 물론 1991년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최악의 유혈 사태다.
무력 충돌로 인한 인명 피해가 속출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시위대·경찰 양쪽서 20여명 사망…총상 희생자 다수
우크라이나 내무부와 보건부 등에 따르면 19일 새벽까지 이어진 충돌로 시위대 11명과 진압 경찰 9명 등 양측에서 20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그러나 이후 추가 사망자가 더 발생했지만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망자 상당수는 총격에 목숨을 잃었으며, 시위대와 경찰 측에서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1천 명에 달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야권 시위대가 여당인 지역당 당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일어나 여당 관계자 1명이 질식사하기도 했다.
현지 신문 '베스티' 소속의 기자 1명도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무부는 폭력 시위를 18일 오후 6시까지 중단하지 않으면 법이 허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겠다는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저녁 8시를 기해 키예프 시내 독립광장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경찰과 내무군은 물대포를 쏘며 광장 쪽으로 진입해 들어갔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총기를 사용해 경찰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최대 야당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아르세니 야체뉵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19일 오전까지 휴전을 제안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압부대는 이후 독립광장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19일 오전 현재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시위대는 진압 작전 재개에 대비해 바리케이드를 치며 전열을 정비하고 있어 긴장은 가시지 않고 있다.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에서도 소요사태가 확산하고 있다. 리보프, 테르노폴, 이바노-프랑코 등 서부 도시들에서 경찰서, 관공서, 보안국 건물 등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다.
◇ 대통령-야권 지도자 협상 불발 = 19일 새벽 바티키프쉬나 대표 야체뉵과 또다른 야당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 비탈리 클리치코 등 야권 지도자들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찾아가 유혈 사태 타개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클리치코는 협상 뒤 "대통령이 시위대에 저항을 중단하고 무기를 내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며 "그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야체뉵도 "인명 살상을 막기위한 즉각적인 휴전과 내무군 철수를 요구했지만 대통령은 시위대가 투항하고 독립광장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며 협상 결렬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성명을 발표하고 "야권 지도자들은 지지자들에게 무기를 잡으라고 선동하면서 경계를 넘었다"면서 "이는 무례한 법률 위반이며 범법자들은 법정에 세워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야권 지도자들에게 유혈을 촉구하는 과격 세력에서 즉각 멀어질 것을 요구하면서 만일 그렇지 않고 극단주의자들을 계속 지지하면 다른 식의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우리는 이미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너무 값진 대가를 치렀다"며 "하지만 이 더이상의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우크라이나를 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내각, 수도 차량 진입 통제
내각 공보실은 19일 0시를 기해 키예프로의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 공보실은 대규모 소요 사태와 관련, 인명 피해를 막고 혼란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블라디미르 마케옌코 키예프 시장은 시민들에게 시내 중심가로 나가지 말 것을 주문했다.
키예프 시 당국은 18일 밤부터 지하철 운행을 중단했으며 이에 따라 시내 전역에서 심각한 교통 혼란이 빚어졌다. 일부 학교는 혼란 사태와 관련 임시 휴교 조치를 취했다.
빅토르 프숀카 검찰총장은 앞서 유혈 사태 이후 그 누구도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상자 한명 한명과 불탄 자동차, 부서진 창문 등에 대해 난동범들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검찰은 폭력 행위를 선동한 자와 이를 주도한 자 모두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제사회 우려 심화
미국은 무력 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즉각 상황을 진정시키고 시위대와의 대치를 중단해야 한다"며 야권과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제프리 파얏트는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믿지만 폭력 사용에 대한 제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정부 쪽에 유혈 사태의 책임을 더 많이 돌리는 톤이었다.
유럽연합(EU)은 정부와 야권 모두의 자제를 촉구했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야권과 정부는 즉각 악화하는 사태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며 "EU는 양측의 대화를 돕기위해 어떤 지원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슈테판 퓔레 EU 확대담당 집행위원은 트위터 글에서 이번 유혈 사태에 유감을 표하고 정부와 야권이 대화에 나서라고 호소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도 레오니트 코좌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와 야권이 대화를 계속할 것을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대변인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며 대화 재개를 요구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도 폭력과 인명 피해에 우려를 표시하고 양측이 서둘러 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장국인 스위스의 대통령 겸 외무장관인 디디에 부르크할터는 분쟁 당사자들이 평화적 대화가 유일한 사태 해결책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