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예전 정부들은 취임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등의 행사를 가졌지만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싫어하는 박 대통령의 성격 때문에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
대신 취임 1주년을 맞아 신년기자회견 때 약속했던 '경제개혁 3개년 계획'과 그 세부내용을 발표함으로써 경제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할 예정이다. 이벤트가 아닌 실질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취임 2년을 시작하겠다는 것으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 희망
박근혜 대통령. (윤창원 기자)
박근혜정부의 출범은 여느 정부의 출범과 마찬가지로 기대와 희망속에 출발했다. 그 기대와 희망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세계적으로도 드문 부녀 대통령, 비극적인 가족사를 딛고 권력의 최정상에 올랐다는 데 있지 않았다. 대선 기간중 야당 후보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약속한 말과 공약들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경제민주화를 약속했고, 부채탕감과 신용회복을 약속했다. 지역균형 발전과 대탕평인사를 실천하겠다고 했다.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씩을 주고, 4대중증 질환자에게는 건강보험을 100%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남북대결구도 하에서 대화를 통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주창했고, 지금까지의 관행을 과감하게 깨고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미국이 아닌 중국에 특사를 먼저 보냈다. 의회주의자로서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취임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가겠다"고 했고,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으로 국민들이 근심 없이 각자의 일에 즐겁게 종사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개개인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위주의 사회,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리는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 실망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초대 내각의 장관.차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인사참사'가 빚어졌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차관 내정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 위원장 후보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윤창원 기자)
인사 검증 실패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 '밀봉인사', '수첩인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인사실패는 박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경고음이었다.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린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강화됐지만, 그 결과는 '늑장인사'로 나타났다. 새정부 출범 반 년이 훨씬 지나도록 각 부처의 장.차관만 바뀌었을 뿐 고위 공무원에 대한 후속인사나 산하기관장에 대한 인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공무원들이나 공공기관이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8월초에 발표된 세제개혁안은 인사실패 못지 않게 국민들을 들썩이게 했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저소득층은 세금이 줄고 고소득층은 세부담이 상당히 늘어나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사실상 세금을 더 내게 되자 조세저항의 기미까지 보이는 등 반발이 거셌다. 박 대통령은 손을 들었다. 원점에서 재검토 지시가 내려졌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국기를 흔드는 중대범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 댓글녀'에서 시작된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은 국정원 심리전단, 군 사이버사령부등으로 확대 됐다. 하지만 여당의 무시와 야당의 무능으로 모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 대통령도 미온적이었다. 국정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도 없고, 도움을 받은 일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에 셀프개혁을 주문했다.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등 중요한 고비마다 정치에 개입했다.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씩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공약파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 과정에서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의 사퇴 파동이 일어났다.
◈ 관망박근혜 대통령 지지도를 떠받치고 있는 분야가 외교와 남북관계다.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 중국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 북한과는 안보우선을 바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는 게 박근혜정부 대외 정책의 큰 틀이다.
남북관계에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과 군사위협, 급기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신뢰와 원칙'을 잣대로 일관된 정책을 편 결과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이르게 됐다.
남북관계는 앞으로도 무수한 부침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양쪽 최고책임자의 의중을 파악했고, 일종의 핫라인이 구성된 만큼 이명박 정부 이후 단절됐던 교류협력의 확대가 기대된다.
박 대통령이 밝힌 '통일은 대박'이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없이 통치구호화되거나, 북한의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일 경우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외교분야에서의 성과는 꽤 크다. 한반도 주변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전혀 이상이 없다.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발언을 반복하고 있는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숙제다. 이제 일본 탓만 할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서서 한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기가 점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이에 맞서 우리나라도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할 때 보여줬던 외교력을 다시 한번 보여줘야 할 때다.
◈ 전망
박 대통령에게 취임 1년은 나쁘지 않다. 이런 점을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제공)
주간 단위로 지지도를 조사하는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주 박 대통령 지지도는 56%였다. 연이은 인사실패로 코너에 몰렸던 지난해 4월 첫주의 지지율 41%까지 떨어졌던 데 비하면 15%p나 높은 수치이다. 역대 대통령 취임 1년 시점 긍정률과 비교하면 15대 김대중 대통령보다는 약간 낮고 14대 김영삼 대통령과는 비슷하며 13대 노태우, 17대 이명박, 16대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박 대통령 취임 당시에 비하면 남북관계는 상당히 안정돼 있고, 주도권을 쥐었다고 할 수도 있다. 여대야소로 인해 청와대의 계획과 의지가 여당인 새누리당을 통해 국회에서 입법화 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 전망도 현재로서는 나쁘지 않다.
{RELNEWS:right}뭐니뭐니해도 박근혜정부의 성공 여부는 경제에 달려 있다. 후보시절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던 박 대통령이 정권의 토대가 만들어진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활성화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정은 녹록치 않다. 수출위주의 경제구조상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 대외여건의 바람을 탈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기획재정부 등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올해 3% 후반대의 경제성장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지금처럼 대기업이 생산과 수출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기 힘들다. 세수부족으로 약속했던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