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그날의 기억 간직해야"…소리높이는 日 지진피해자

아시아/호주

    "그날의 기억 간직해야"…소리높이는 日 지진피해자

    • 2014-03-02 18:25

    재난의 경험·대비책 공유하자는 움직임…상징 시설 철거 논쟁도

     

    "피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여러 문제를 미래를 위해 해결하고 피해자가 아니면 모르는 고뇌와 슬픔이 풍화되지 않게 전하는 것이다."

    일본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에 있는 리아스아크 미술관에 '피해자의 사명·의무'라는 제목으로 기재된 글의 일부다.

    지진과 쓰나미로 망가진 삶의 터전을 재건하고 비슷한 재난에 충분히 대비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당위론에 소명 의식마저 느끼게 한다.

    2일까지 사흘에 걸쳐 미야기현에서 만난 주민에게서는 실제로 이런 자세와 함께 슬픔과 충격을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는 절절함이 묻어 나왔다.

    대지진 당일 어머니가 실종돼 아직도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스가와라 기요카(菅原淸香·63·여) 씨는 미나미산리쿠초(南三陸町)에서 '내가 겪은 3·11'이라는 제목으로 재해의 경험을 방문자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는 대지진 때 실종된 어머니의 생사를 아직도 확인하지 못해 새로 나온 사망자 명단을 확인하러 매일 재해대책본부를 찾아가고 있다.

    스가와라씨가 눈시울이 붉어히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머물고 있던 노인복지시설이 3·11 대지진 때 예상보다 훨씬 큰 쓰나미에 물에 잠겨버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언제 또 닥칠지 모를 재난에 사람들이 더 잘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가와라씨는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다른 가족과도 소식이 끊겼다가 4일 만에 아들과 연락이 닿았을 때 비로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어머니가 구조자에 포함되지 못했음에도 쓰나미가 밀려올 때 근처 고등학교 학생이 복지시설에 달려가 거동을 못하는 노인을 평가시킨 것을 아낌없이 높이 평가한다.

    스가와라씨는 "젊은이들이 노는 것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이렇게 남을 돕는다는 것을 대지진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대단하냐"고 말했다.

    재난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소중한 목숨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도구라(戶倉)초등학교, 방재대책청사 등 대지진 당시 미나미산리쿠의 주요 피난지역, 희생자가 발생한 곳 등을 돌며 많은 여러 명을 구한 현명한 판단, 멸사봉공의 정신을 발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또 쓰나미를 피해 산으로 올라간 초등학생들이 졸업식을 준비하며 연습한 노래 '다비타치노히니'(길 떠나는 날에)을 부르며 가족의 생사조차를 모르는 상황이 주는 불안감을 이기고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낸 얘기로 방문자가 쓰나미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고 있다.

    다비타치노히니를 쓴 가수겸 작곡가 가와시마 아이(川島愛)는 이 사연을 전해 듣고 2011년 8월 21일에 뒤늦게 열린 졸업식에 참석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하시모토 시게요시(橋下茂善·65) 게센누마 관광컨벤션협회 사무국장도 재난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들 중 한명이다.

    그는 "시간이 지나고 엉망이 된 것을 정리하고 나면 기억이 점점 흐려진다"며 "사진이나 기록을 잘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 중 하나는 잘 때 머리맡에 꼭 신발을 두고 자라는 것이다. 밤중에 지진이나 쓰나미가 나서 대피하면 신발도 챙기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생생한 조언이다.

    이들은 쓰나미가 남긴 흔적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쓰나미로 여기저기에 흩어진 가재도구, 구조물, 건물 잔해 등을 쓰레기나 폐기물에 비유하는 것조차 적당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모든 주민이 스가와라씨나 하시모토 사무국장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친지를 앗아간 쓰나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을 가급적 치우고 싶다는 상반된 의견을 가진 이들도 꽤 있다.

    바다에서 1㎞가량 떨어진 육지로 떠밀려가 3·11 쓰나미의 위력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던 330t급 어선 교토쿠마루(共德丸)호는 논쟁 끝에 철거됐다.

    쓰나미가 밀려올 때 대피 방송을 하느라 피신하지 못해 희생된 엔도 미키(遠藤未希·여·당시 24세) 씨의 넋을 기리는 장소인 미나미산리쿠초 방재대책청사 건물을 잔존시킬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민의 자발적 모임임을 중심으로 '미야기의 지금을 보세요'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지진 당시의 생생한 경험담 등을 여행자가 들을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미야기현도 이를 지원하고 있고 현지 여행업계도 이런 여행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