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과 일본 간의 외교와 역사 분쟁에서 새로운 격전지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13면 전면에 실은 '미국, 아시아 경쟁의 중심 무대가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010년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데 이어 최근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동해 병기 법안이 통과되고 뉴욕주에서도 같은 법안이 추진되는 사실을 소개하며 이같이 평가했다.
동해 병기 법안과 관련해 한일 양국의 미국 주재 대사는 버지니아 주지사를 공식적으로 만나 입장을 전달했고, 일본은 로비스트까지 고용하는 등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고 신문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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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국은 중국의 패권주의와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한국은 물론 일본과 공조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나름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양국 간 대치가 날로 격화하면서 결국은 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와이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의 조너선 버크셔 밀러 일본-한국실무그룹 소장은 "한국이나 일본 측이 접촉하지 않은 미국 동부지역의 대학 교수는 단 한명도 없다"며 최근 일본군 위안부와 동해 문제를 놓고 미국에서 뜨겁게 전개되는 한일 양국 간 홍보전의 분위기를 전했다.
양국 간의 여론전은 지난해 여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건립되면서 다시 한번 후끈 달아올랐다. 화들짝 놀란 극우 성향의 일본 정치인들이 현지를 방문해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한국은 4월로 예정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을 앞두고서도 사활을 건 자존심 싸움을 전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일본에서 2박을 하고 서울은 들르지 않을 계획이었으나, 한국은 "중국이 박 대통령에 참으로 호의적"이라며 미국을 압박해 일본 일정을 줄이는 대신 한국 방문을 끼워넣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뉴욕의 유엔본부와 컬럼비아대 등에서 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했고, 국회는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외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에 일본은 친미파 인사들을 대거 미국으로 보내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을 가능성을 경고하는 한편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수정 카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양국의 이런 행보는 미국을 압박해 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교토대학의 나카니시 히로시 국제정치학 교수는 "미국은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펼치는 홍보전의 핵심적인 전장"이라며 "한국과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 축소를 시도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이 먹혀들고 있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일제의 야만적 식민지배에 뿌리를 둔 양국 간의 분쟁은 강성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이후 더욱 악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때 양자분쟁으로 치부되던 한일간의 문제가 이처럼 국제이슈로 비화한 이면에는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점차 이동하는 현실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한국이 그동안 축적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100년간 유지된 일본의 아성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미는 차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국 간 싸움에서 현재 한국이 우위를 점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제사회로부터 군위안부 문제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중대한 침해라는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뉴욕 퀸즈커뮤니티칼리지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군 위안부 상설 전시관을 설치키로 한 것은 한국이 명분에서 이기고 있음을 웅변한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첫 대좌를 성사시킴으로써 최소한 폭발 직전의 뇌관을 제거하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