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한 국가정보원 권모 (51) 과장이 24일 오전 서울 풍납동 아산 병원에 입원해 있다. 사진은 이날 응급 중환자실의 모습. (송은석 기자)
국정원 대공수사팀 베테랑 요원으로 알려진 권모 과장이 22일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을 기도했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 자살 시도자는 국정원 협력자 김모(61) 씨에 이어 권 과장이 두번째다.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국정원과 검찰, 의료진에 따르면, 현재 대형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권 과장은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권 과장은 지난 22일 오후 1시 33분께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옛 신장동) 모 중학교 앞에 주차된 싼타페 승용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당시 자신의 차량 앞을 막은 채 주차되어 있던 싼타페 승용차로 다가가 차 안을 살펴본 여성이 권 과장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권 과장은 3번째로 소환된 지난 21일 오후 3시쯤 검찰 조사를 받다가 돌연 검찰 청사를 빠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권 과장이 조사 도중 임의로 검찰 청사를 빠져 나갔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권 과장이 빠저 나간 시점이 한낮(오후 3시경 넘어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권 과장으로 하여금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했을까?
권 과장은 검찰 조사 직후 <동아일보>기자와 만나, "나는 27년간 대공활동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일해왔다. 그런데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갖은 모욕을 다 당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문서위조 개입 혐의와 관련해 권 과장은 "문서 위조사실은 김 과장(구속, 일명 김사장.국정원 요원)과 김 씨(61,국정원 협력자)만 알겠지만 우리는 전혀 몰랐다. 정보기관은 실체를 보고 검찰은 법만 보고 있다"며 "검찰이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며 조직적인 위조활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대해 "수사 도중 임의적으로 조사실을 떠난 점과 진술 내용 등을 고려해 볼때 권 과장은 소위, 자신의 진술이 무너지기 직전이었으며 더이상 윗선을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자신이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이번 수사를 현시점에서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권 과장을 상대로 국정원 협력자에게 지급한 특수 활동비 결재와 문서 위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문건'등을 통해 권 과장에게 대공수사팀장 이모씨(3급,처장)이 관여한 혐의를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국정원이 윗선으로 향하던 검찰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꼬리자르기'에 나선 것은 이번 만이 아니었다.
국정원은 21일에도 "김 과장이 가짜 중국 공문서를 써주며 협력자인 김모씨에게 위조를 지시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이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이 내용은 사실무근"이라며 검찰 수사과정에서 일방적 주장이 언론에 유출돼 사실인 것처럼 보도된데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검찰이 김과장의 진술내용을 의도적으로 누출시킨 것이라고 단정하고 검찰에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이 구속된 김 과장을 '버리는 카드(바둑에서 사석)'로 판단하고, 김 과장선에서 사건을 종결짓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과장의 자살 기도로 문서조작의 윗선 배후 인물을 구속하려는 검찰 시도는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윗선으로 연결되는 핵심 고리인 권 과장이 중태상태인데다 의식이 회복되지 않는 한 신속한 수사전개가 어렵기 때문이다.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