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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스포츠레터]'아! 삼성화재'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 보다

농구

    [임종률의 스포츠레터]'아! 삼성화재' 강철로 된 무지개인가 보다

    '신치용, 포에버!' 삼성화재는 V리그 7연패를 달성하면서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사진은 3일 현대캐피탈과 챔프전에서 승리한 뒤 신치용 감독이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는 모습.(자료사진=KOVO)

     

    올 시즌도 V리그의 왕좌는 삼성화재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벌써 7년 연속,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업적입니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10번의 챔피언결정전에서 8번 정상, 승률 8할입니다.

    이외 팀이 우승한 것은 2006-07시즌 현대캐피탈이 마지막이었습니다. V리그 이전 실업 무대까지 포함하면 겨울리그 9연패, 최근 18번의 챔프전에서 16번 우승. 승률은 8할8푼8리까지 올라갑니다. 거의 '독식'(獨食)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 철옹성을 깨기 위해 다른 팀들은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V리그 초창기 삼성화재와 자웅을 겨뤘던 현대캐피탈에 이어 지난 시즌까지 최근 3년 동안은 대한항공이 대항마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최강의 국내 선수들을 보유했던 대한항공도 삼성화재와 챔프전에서는 날개가 꺾였습니다. 사령탑을 바꾼 초강수 전략도 도통 먹히지 않았습니다.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친 2010-11시즌이 삼성화재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신치용 감독의 사위이자 토종 거포 박철우를 FA(자유계약선수)로 데려오면서 베테랑 세터 최태웅을 잃은 출혈로 팀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기어이 준플레이오프(PO)와 PO, 챔프전 도장 깨기로 다시 정상에 섰습니다. 정규리그 4위 LIG손해보험은 물론 2위 현대캐피탈, 1위 대한항공까지 3번이나 산을 넘었습니다.

    올 시즌은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의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현대캐피탈은 2005-06시즌까지 무려 '두 번'이나 삼성화재의 우승을 저지, 100% 승률을 막은 유일한 팀이었습니다. 라이벌로서 위상과 배구 명가의 명성을 다시 찾기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시즌 전 삼성화재 전성기를 이끈 '월드 리베로' 여오현을 전격 영입해 우승 DNA를 심었고, 세계 3대 공격수로 꼽히는 '콜롬비아산 거포' 아가메즈도 데려왔습니다. 특히 삼성화재 우승을 두 번 막았던 김호철 감독을 '우승 청부사'로 다시 모셔왔습니다.

    280억 원을 들여 코트와 트레이닝 훈련장 등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배구전용 다목적 베이스캠프까지 지었습니다. 배구단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안남수 단장이 권토중래해 절치부심 준비한 '타도 삼성화재' 프로젝트였습니다. 정규리그 동안에는 경기 외적인 신경전도 치열하게 오갔습니다.

    '월드 리베로도, 우승 청부사도...'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화재에서 리베로 여오현(왼쪽)을 데려오고 드림식스 사령탑이던 김호철 감독을 모셔오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또 다시 삼성화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진은 3일 삼성화재와 챔프전 4차전 모습.(자료사진=KOVO)

     

    하지만 아낌없는 투자와 필사의 노력도 굳건한 삼성화재 왕국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현대캐피탈이 아가메즈 없이도 챔프전 1차전을 가져오며 희망을 갖는 듯 했지만 역시나였습니다. 삼성화재는 1패 뒤 내리 3승을 거두며 왕국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다졌습니다.

    20년 동안 아성을 지켜온 신치용 감독의 지도력, 이만하면 '입신(立神)'의 경지라 할 만합니다. 판을 꿰뚫는 냉철한 안목과 선수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새벽 훈련 등 혹독한 조련, 무슨 일이 있어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고집. 18번 중 16번의 우승을 일궈낸 신념입니다.

    신 감독은 매 시즌 "연이은 우승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하위 라운드 지명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선수 부족을 호소합니다. 지난 시즌에도 "그러니 석진욱(38, 현 러시앤캐시 코치), 고희진(34)이 지금까지 뛴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하지만 귀신처럼 선수들을 조련해냅니다. 지태환, 고준용 등은 1라운드 6순위 선수들이지만 우승의 주역이 됐습니다. 삼성화재만의 훈련과 문화에 차츰 우승 DNA가 주입되는 겁니다. 주장 고희진은 "모든 팀들이 이제 우리를 따라하려고 한다"면서 "그러나 결코 우리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고희진은 또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억울해서라도 우승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보너스보다 휴식이 더 반가울 정도의 강훈련. 애주가인 신 감독은 전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웨이트 훈련장으로 나선다고 합니다.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선수들은 그 시간부터 땀을 흘립니다.

    밤 10시가 되면 휴대전화는 압수입니다. 신 감독은 "프로에게 어떻게 보면 규제일 수 있지만 잠은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기본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약속이고 이제는 선수들이 알아서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귀신같이 애인이나 지인과 연락들은 하고 산다는 귀띔입니다. 물론 훈련에 지장이 없는 한이죠.)

    '겨울왕국, 언제까지 이어질까' 우승 주역 레오(왼쪽)와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3일 7년 연속 V리그 정상을 확정한 뒤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자료사진=KOVO)

     

    삼성화재의 독주(獨走)는 어쩌면 V리그에 독(毒)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매번 같은 팀이 우승한다는 식상함에 배구 인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공격은 강력한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고 국내 선수들은 블로킹과 수비에 전념하는 전술이 단조롭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어떻게 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을요. 삼성화재는 정상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열악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팀들의 분발을 이끌어내고 리그 수준을 높인다는 순작용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라이벌 현대캐피탈을 비롯해 대부분 팀들은 삼성화재의 전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겨울이면 깎아지른 듯 두터운 얼음 절벽으로 우뚝 선 왕국. 한치의 범접도 용납하지 않은 채 리그를 군림해온 V리그의 지배자, 삼성화재. 이육사의 시 한 구절이 절로 생각이 납니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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