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제는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생존자의 귀환을 기원하며 치러졌다.
세월호 승무원 고 박지영 씨는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하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산재사망 노동자들도 그러하다. 무거운 삶을 짊어진 채 땀 흘려 일하다 불행한 사고로 떠나야 했다.
그들 대다수의 죽음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천재지변이 아니고 인재라는 것이다. 기업의 과욕 탓에 생명의 존엄함과 사람의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수익성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생략되어 버리면서 생긴 구조적 참사가 허다하다.
세계 산재사망노동자의 날이 만들어진 계기도 인재에 대한 각성과 뉘우침에서다.
1993년 태국의 한 인형공장에서 188명의 노동자들이 화재로 숨졌다. 유명한 '심슨가족' 인형을 만드는 태국 '캐이더(Kader)' 공장이었다.
관리자들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까 우려해 작업 중인 공장문을 잠가 버리면서 노동자들은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사고가 난 4월 28일을 맞아 70여 개 국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 추모행사가 열리면서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 제정된 것이다.
2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및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제에 참석자들이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세월호는 배만이 아니다…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하루 5.3명 꼴이다. 2013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29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것이 전부일 리 없다.
사고로 다쳐 신음하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 숨지면 통계에서는 빠진다. 산재보험 여부가 논란이 되어 법적 시비가 일어도 빠진다. 사업주의 압박과 회유로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못해도 역시 이 숫자에 들지 못한다.
이렇게 저렇게 일터 곳곳에서 숨진 노동자를 한 자리에 모두 모은다면 두어 달에 한 번 씩 세월호가 물에 잠기는 셈이 된다.
사고성 사망 만인율을 보자. 이것은 노동자 1만 명당 질병 아닌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는 지수이다. 2013년 통계로 사고 사망 만인율은 한국 0.71, 미국 0.38, 일본 0.22, 독일 0.18, 영국 0.05이다.
우리의 사고 사망 비율은 미국의 2배, 일본·독일의 3배이다. 이 숫자를 보며 우리나라는 건설현장이 많으니 당연히 사고사망율이 높다고 한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분야별로 따지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목숨의 무게는 모두가 똑같다. 건설현장이 많다면 그 현장에 적용할 안전수칙을 더 엄격히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일 것이다.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산업 현장의 안전을 감독하는 감독관 현황이다. 우리나라는 감독관이 300명, 전국의 사업장은 150만 곳이니 감독관 1사람이 5천 개 사업장을 감독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휴일 없이 매일 사업장을 돌지도 않을 것이고 보고서 작성 등 다른 업무도 있을 테니 담당 사업장 1번씩 돌아보는데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독일은 4,400명이다.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캐나다, 호주는 부실부정한 관리로 숨질 경우 산업상의 살인으로 간주한단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이 있어 작업장 사망사고 벌금이 6억 9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50만원이다.
(사진=윤창원 기자)
선진국이 아니어서 열악하고, 작은 사업장이니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건 변명이다. 최근 들어 언론보도로 우리에게 전해진 사고들을 읽어보자.
"선박 화재로 2명 사망…'관리 부실이 사고 키워'"… 이것은 현대중공업.
"이산화탄소 누출로 노동자 질식사망"… 이것은 삼성전자.
"순환전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철도노조 조합원 자살"… 이건 코레일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고 노사 관계가 좋을수록 재해율은 낮다. 2012년 상황자료를 근거로 한 안전보건공단 연구원의 '노사협력과 산업재해에 관한 연구' 결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노조를 종북으로 색칠하는 풍조가 되살아나고 있다.
생명보다 수익을 앞세우고, 그 관행을 정부 감독기관이 눈 감아 주고, 그 감독기관 사람들은 퇴직해 그 사업장에 자리를 얻어 앉는 단순하고도 힘 있는 선순환 구조, 그 풍토 속에서 노동자들이 위험을 피할 곳은 자꾸만 줄어든다.
요즘 대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거론한다.
공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고 노동자 가족이 유가족이 되는 비극이 단절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런 산재 사망사고의 예방에 우리 사회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기업윤리와 사회공헌은 헛된 전시성 구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