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KBS 본관 자료사진
KBS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실린 38기, 39기, 40기 기자들의 반성문 10편을 노조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진도 팽목항 중계차 주자로 근무하던 지난달 25일 새벽 3시쯤,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타사에서는 사망자 수가 184명으로 나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181명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빨리 확인해 달라는 전언이었습니다.
확인 결과 팽목항 가족대책본부의 상황판에는 181번째 사망자 발견이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사고수습대책본부 등 다른 창구에서도 새로 들어온 소식이 없다는 답을 듣고, 사망자 수는 그대로라고 보고했습니다.
사망자 집계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곳이 팽목항 상황판이고, 상황판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때부터 오후 1시쯤까지 비슷한 전화가 다른 선배들에게 연이어 걸려왔습니다. 같은 요청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확인이 느리냐는 질책도 섞여 있었습니다.
여전히 상황판에는 변화가 없었고, 사망자가 더 나왔다는 소식도 전혀 없었습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같은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84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것은 오후 3시 23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사는 12시간 이상 오보를 내보내고 있던 셈이었고, 저는 발견되지도 않은 사망자를 찾아 헤맨 꼴이었습니다.
상황이 종료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타사 속보에 대해 확인하는 건 현장 취재기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타사 속보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을 몇 차례나 알렸는데도 같은 질문이 잇따라 들어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건의 국면이 바뀌는 결정적인 사안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확인될 게 뻔한 사망자 수에 대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소식이든 타사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관성이 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속보 자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학생 전원 구출'이라는, 사고 첫날의 대형 오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사고 당일 오전에 나온 오보는,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들이 취재진에게 분노하기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만 믿고 아이를 보러 왔다가 비보를 들었다며 오열하는 학부모를 지켜봤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들의 분노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사 전 최종면접에서 보도의 정확성과 신속성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공영방송은 당연히 정확성이 우선이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대형 사건사고의 경우 오보는 치명적일 수 있고, 재난주관방송사로서 KBS는 신뢰할 수 있는 방송을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불과 아홉 달 전의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 답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막내 기자로서 갖고 있는 신념을 아직 저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