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 효실천나눔사랑(효사랑) 요양병원에서 화재로 3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허술한 요양병원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치매 환자도 급증하면서 1천여개 요양병원이 난립하고 있지만, 불어나는 규모에 비해 요양병원의 의료서비스나 안전 관련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 요양병원, 치매 노인 등 장기입원·치료…고령화 더불어 5년새 병상 수 2.6배로
요양병원은 치매 환자 등 주로 장기 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을 돌보며 치료하는 기관이다.
언듯 일반 요양(보호)시설과 비슷해보이지만, 요양시설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개인과 법인 등이 일정 자격만 갖추면 개설할 수 있는데 비해 요양병원은 반드시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만 만들 수 있는 의료기관이다. 일반 병원과 마찬가지로 1·3·5·7·9인실 등 다양한 규모의 병상을 갖추고, 의사나 간호사들이 24시간 입원 환자를 관리하며 응급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요양병원은 최근 사회의 전반적 고령화와 '실버산업' 성장과 더불어 급증하는 추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전국 요양병원은 1천284개로 지난 2008년말(690개)와 비교해 5년여 사이 2배로 늘었다. 요양병원의 병상 수 역시 같은 기간 7만6천556개에서 2.6배인 20만1천605개로 크게 불었다.
◇ 응급벨조차 없는 요양병원 수두룩…간호사 1명이 많게는 47명 돌봐
그러나 현재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이 받는 의료·편의 서비스의 질은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다.
심평원의 '2012년도 요양병원 입원 진료 적정성 평가'를 보면, 2012년 3월 현재 937개 요양병원 가운데 69.7%만 최소한의 응급시설인 호출벨을 모든 병상·욕실·화장실에 두고 있었다. 36곳(3.8%)은 병상·욕실·화장실 바닥의 턱을 제거하지 않거나 안전손잡이를 전혀 설치하지 않았고, 심지어 0.4%(4곳)와 0.7%(7곳)의 요양병원은 각각 산소 공급장비와 흡인기를 1대도 갖추지 않았다.
인프라 여건상 현실적으로 화재를 비롯한 응급 상황에서 요양병원측이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입원 환자들을 짧은 시간 안에 대피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이다.
환자 수에 비해 의료인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계속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심평원 조사(2012년) 결과, 요양병원의 의사 1인당 평균 담당 환자 수는 31.0명에 이르렀고, 많은 경우 의사 1명이 65명을 진료하는 경우도 있었다. 곁에서 환자를 수시로 돌봐야하는 간호사의 경우 역시 1인당 평균 담당 환자 수가 11.4명, 최대 47.1명으로 집계됐다. 평일 야간이나 휴일에 당직의사가 상주하는 요양병원도 44% 뿐이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연평균 1일 입원환자 40명에 1명 꼴로 의사를, 연평균 1일 입원환자 6명에 1명꼴로 간호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야간 당직의 경우 환자 200명당 의사 1명, 간호사 2명이 근무해야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화재 요양병원에서 당직 근무자 수 기준을 위반했는지 등은 추후 조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요양병원 설립 기준이 일반병원보다 느슨해 과잉 공급 상태인데다 인력 기준 등에 미달하는 사례도 상당수"라며 "인력 조건 등 요양병원 개설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작년 인증제 도입했지만 실효성 의문…효실천나눔사랑 요양병원도 이미 인증받아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보건당국은 지난해 1월부터 요양병원 인증제를 도입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전문위원 4~5명이 요양병원 현장에 직접 나가 ▲ 환자안전 보장 활동 ▲ 진료전달 체계 ▲ 진료지원 체계환자 등의 측면에서 203개 조사 기준을 충족하는지 살피고, 통과한 경우에만 요양병원으로서 정부가 공식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모든 요양병원은 의무적으로 2016년말까지 인증을 마쳐야하지만, 아직 도입 초기라 전국 약 2천개 요양병원 가운데 4월말 현재 약 300개 정도만 인증 절차를 밟았다.
더딘 인증 속도도 문제지만, 과연 인증이 해당 요양병원의 환자 안전, 의료서비스 질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RELNEWS:right}
이번에 화재 참사를 겪은 효실천나눔사랑 요양병원조차 이미 지난해 12월 18일 인증을 받은 곳이다. 비교적 빨리 진화된 화재에도 30여명의 환자와 근무자가 목숨을 잃거나 다쳤지만, 인증 과정에서 이 요양병원의 화재 대응 시스템이 지적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인증원의 '요양병원 인증 조사 기준'에는 '화재' 관련 5개 세부 조사 항목이 있다. 그러나 '화재 안전관리 활동 계획이 있다'·'활동계획에 따라 화재예방점검을 수행한다'·'직원은 소방안전에 대해 교육을 받고, 내용을 이해한다'·'금연에 대한 규정이 있다'·'금연규정을 준수한다' 등 대부분 계획과 교육 여부 정도만 따지는 수준이다.
더구나 효실천나눔사랑 병원은 최근 각각 복지부와 전남도 지시로 지난 9일과 21일 진행된 자체 안전점검과 보건소 현장점검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처럼 겉핥기식 안전 관리와 부주의 탓에 요양병원 화재 사고는 해마다 1~2건씩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환자 1명이 숨지고 연기를 마신 4명이 치료를 받은 바 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상 요양병원이 스프링클러(화재시 자동 방수 설비)를 반드시 갖춰야하는 특정소방대상물에서 빠져있는 '헛점'도 요양병원의 화재 피해를 키우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리 부처(복지부)의 요청으로 요양병원을 스프링클러 의무 대상으로 규정한 시행령 개정안이 현재 입법예고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아직 요양병원 인증제가 시행된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인증 요양병원 수가 많지 않다"며 "인증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인증 요양병원에 대해 의료수가(의료서비스 대가)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법으로 질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