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휩쓰는 사극 열풍에 대해 "지금 세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풍경이 다른 시대와 사람을 만나려는 시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근대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다가 현란한 이미지 남기기에만 주력하는 대다수 사극에 대해 "옷만 다를 뿐 옛 사람들의 내면이 지금과 똑같다는 점만 확인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은 물론 지금 우리의 삶까지 억압하는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현재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창조적인 성찰의 힘을 얻는 데서 사극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여름 성수기를 맞이하는 다음달 극장가가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부은 사극 세 편의 각축장으로 변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들 작품은 사극으로서 특별한 영화적 가치를 뽐낼 수 있을까.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면모를 살펴본다.
■ '군도' 아직 끝나지 않은 민란의 시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다음달 23일 개봉하는 군도는 탐관오리들이 판치던 조선 후기, 세상을 뒤집기 위해 나선 의적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로 하정우가 의적 도치 역을, 강동원이 백성의 적 조윤 역을 각각 맡아 연기 대결을 펼친다.
철종 13년 잦은 자연재해에 따른 기근에다 관의 횡포까지 겹치면서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진다. 그 사이 나주 대부호의 서자로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은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해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소 돼지를 잡아 근근이 살아가던 천한 백정 돌무치는 죽어도 잊지 못할 끔찍한 일을 당한 뒤 군도에 합류해 의적 도치로 거듭난다.
군도는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7),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그늘을 들춰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 온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충무로의 대세 배우인 하정우와 강동원을 필두로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정만식 김성균 김재영 이경영 등 내로라하는 연기 베테랑들이 대거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 '명량' 13척 배로 330척을 물리친 사상초유의 전투
영화 '명량'의 한 장면
다음달 30일 개봉하는 명량은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의 배로 왜선 330척을 물리친 명량대첩을 그린 작품이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조선은 오랜 전쟁 탓에 혼란이 극에 달해 있다.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단 12척의 배뿐.
잔혹한 성격에다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이고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로 나선다.
이 영화는 747만 관객을 동원한 '최종병기 활'(2011)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한민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가슴 조리게 만드는 추격신을 선보였던 김 감독은 명량에서도 명량대첩의 전투신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최민식 류승룡을 비롯해 김명곤 조진웅 진구 이정현 등 신구 조화를 이룬 출연진이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 '해적' "고래가 삼킨 조선의 국새를 찾아라"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한 장면
올여름 개봉하는 해적은 한국판 '캐리비언의 해적'을 표방하고 있는데, 조선 건국을 보름 앞둔 가운데 고래의 습격으로 사라진 국새를 찾고자 해적과 산적, 그리고 개국세력이 벌이는 바다 위 통쾌한 대격전을 그리고 있다.
"조선 바다를 호령하는 나를 좀도둑이라 하다니. 국새를 찾아 빼앗긴 바다를 되찾자"는 해적, "바다가 넓다 한들 내 배포만 하겠느냐. 사나이답게 국새 찾으러 바다로 가자"는 산적, "시간은 단 보름. 나의 목숨이 걸렸으니 국새를 찾아 바쳐라"는 입장의 개국세력이 벌이는 다툼이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