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전 대법관(왼쪽),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자료사진)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퇴 과정이나 사퇴이유는 너무나도 달랐다.
안대희 후보자는 지명 6일만에 스스로 물러났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청와대가 사실상 후보 지명철회의 입장을 밝혔지만 버티다가 14일만에 물러났다.
안대희 후보자의 사퇴 회견은 2분 만에 끝났다. 그렇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13분간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안대희 후보자의 기자회견문 원고는 2.7장 분량이었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11장 분량이었다.
기자회견의 태도도 안대희 후보자는 담담하게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격정적이었다.
특히 두 후보자의 사퇴의 변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났다. 안대희 후보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더 이상 국무총리 후보로 남아있는 것은 현 정부에 부담이 될 뿐"이라며 '내탓'을 앞세웠다.
그렇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자신의 사퇴가 '민주주의 위기'인양 부각시켰다. 문 후보자는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대해서는 "법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는데 국회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누가 법을 지키나"고 했고, 언론에도 "발언 몇 구절을 따내 보도하면 진실보도가 아니다"라며 국회와 언론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렇지만 인사청문회법 절차는 청와대가 국회에 임명동의요청서를 보내야 시작되는 것이니까 국회가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국회에 동의요청서를 보내지 않은건 청와대지 국회가 아니다. 탓을 하려면 청와대나 박근혜 대통령을 탓해야 한다.
40년을 언론인으로 살아왔다면서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언론보도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지 진실을 모두 보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은 사실보도를 근간으로 할 수밖에 없다. 문 후보자가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뿐"이라고 폄하했지만 문 후보자 자신이 쓴 기사나 칼럼이 이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는 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의 희망이 없다"고 했는데 어떤 언론이 진실을 외면하는지 그 판단은 국민들의 몫일 것이다.
안대희 후보자는 청와대나 여권에서 사퇴의 압박이 오기 전 스스로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물러났지만 문창극 후보자는 청와대의 사퇴압박(?)에도 버티다 장광설만 늘어놓고 모양 사납게 물러났다. 두 후보자가 살아온 과정도 달랐지만 후보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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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문 |
저는 오늘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합니다.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후 전관예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오해로 인해 국민 여러분 실망시켜 죄송합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제가 공직에 있어서 전관예우를 받은 적이 없어서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전관예우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 조심했습니다.
억울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늘 잊지 않았고, 이들의 편에 서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더 이상 국무총리 후보로 남아있는 것은 현 정부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저의 버팀목과 보이지 않는 힘이 돼준 가족들과 저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이 더 이상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제게는 버겁습니다.
저를 믿고 지명한 대통령께도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려 합니다.
제가 국민여러분께 약속한 부분은 성실히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국민이 보내주신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4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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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전문 |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동료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시는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저의 젊은 시절을 다시 한 번 더듬어본 기회도 갖게 됐습니다. 저의 사십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아니게 마음아프게 해 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도 조그만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한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이며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 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란 것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런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의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의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 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 됩니까.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 그의 옥중 서신이라는 책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신앙의 의미를 밝히셨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젊은 시절 감명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신앙고백을 하면 안 되고 김대중 대통령님은 괜찮은 겁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로 인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 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文南奎) 할아버지가 삼일운동 때 만세를 부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가족사를 아버님(문기석)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 가운데 만세를 안 부른 분이 누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셨다고 했기 때문에, 저도 이렇게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에 검증 과정에서 제 가족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검증팀이 저의 가족 자료를 가지고 보훈처에 알아봤습니다. 저희 할아버님이 1921년 평북 삭주에서 항일 투쟁 중 순국하심이 밝혀져 건국훈장 애국장이 2010년에 추서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의 자녀들도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문남규 삭주 검색창에 쳐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1년 상해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을 찾아보십시오.
저희 가족은 이 사실을 밖으로는 공개치않고 조용하게 절차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고 이미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정치 싸움 때문에 나라에 목숨 바치신 할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다른 독립유공자 자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분의 손자로서 보훈처와 법 절차에 따라 다른 분경우와 똑같이 처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도 그분이시고 저를 거두어주실 수 있는 분도 그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 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6월 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