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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엄마는 10살 아들이 '여성 혐오' 없는 세상에서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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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르포]엄마는 10살 아들이 '여성 혐오' 없는 세상에서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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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여전히 만연한 '여성혐오 범죄'
    강력범죄 피해자 83.5%가 여성
    "혐오하는 마음 걷어내야"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민소운 기자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민소운 기자
    엄마는 열 살배기 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걱정한다.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여성 혐오 범죄,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 살해) 범죄가 일어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사한 범죄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현실이 염려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조혜숙(48)씨는 아들 재우(가명)씨의 손을 잡고 이날 강남역으로 나왔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에 대한 혜숙씨의 설명을 들은 재우는 "화가 난다"며 물었다. "엄마, 왜 그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거야?" 혜숙씨는 "그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거야"라고 답했다. 다만, "이젠 그런 일 없어"라고 말할 수 없어 가슴이 답답했다.

    "나의 권리를 인식한 순간"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민소운 기자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민소운 기자
    이날 혜숙씨와 재우가 찾은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진행했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이 근처 노래방 빌딩 공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모씨가 일면식도 없던 20대 여성 A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김씨는 앞서 화장실에 출입한 여러 명의 남성을 지나보내고, 뒤이어 들어 온 A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김씨가 당시 경찰 조사에서 "여자라서 죽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논쟁이 본격 시작됐다.

    그 잔혹한 범죄가 발생했던 장소에서 지 않은 곳에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테마의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시민들은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이며 기도했다.

    "나에게 강남역이란 인생의 변곡점이다", "나의 권리를 인식한 순간", "변화를 만든 힘", "나에게 강남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염원의 문구들이 벽면 한 곳을 빼곡히 채웠다.

    추모 공간 앞에서 만난 한정민(32)씨도 "여성들은 단지 안전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여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사회라는 걸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민소운 기자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집회를 열었다. 민소운 기자
    오후 2시 본 행사가 시작됐고,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강남역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추모를 딛고, 행동하라" 등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 겸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공동대표는 연단에 올라 "지난 10년 동안 신당역, 인하대, 진주, 부산 등 여성폭력의 현장은 계속 늘어났다"며 "스토킹·교제폭력·디지털 성범죄와도 싸워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한민국 어디에도 또 다른 강남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왔다"며 "여성폭력과 젠더폭력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정하고 국가가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도경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도 "수많은 여성들의 생명을 앗아간 이 비극은 개인의 불운이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자 국가적 재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당역, 신림동, 대전, 의정부, 대구, 부평, 동탄, 남양주, 울산, 그리고 광주.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성차별이 이 끔찍한 재난의 본질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전한 '여성 표적 범죄'…"혐오 걷어내야"

    아직 갈 길은 멀다. 숫자가 현실을 보여준다. 법무연수원의 '2025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4년 강력범죄 피해자의 83.5%, 3만 882명이 여성이었다.

    최소 2951명. 2016년부터 지난 10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죽거나, 죽을 위험에 처한 여성의 수다. 여성 살해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조차 없어,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통해 집계한 '최소' 수치다.

    이날도 집회 현장에 여성 혐오를 표출하는 유튜버가 나타나 한때 소란이 일었다. 그는 여성 비하를 목적으로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며 혐오 표현들을 서슴지 않았고, 결국 경찰들에게 제지당했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들은 아직 희망을 잃지 않는다. 혜숙씨는 "우리 아이 만큼은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며 "모두가 혐오하는 마음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내야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재우 또한 작지만 옹골진 목소리로 다부지게 말했다.

    "모두가 무시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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