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루 게릭' 박찬호가 18일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앞선 은퇴식에서 아내, 두 딸 등 가족과 구본능 KBO 총재(오른쪽), 전 소속팀 후배 이태양(왼쪽)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감을 밝히고 있다.(광주=KIA 타이거즈)
'박찬호라 쓰고 전설이라 읽는다.'
18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관중석에 걸린 문구다.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별들이 총출동한 올스타전에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팬들이 걸어놓은 문구의 주인공 '원조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41)의 은퇴식이다.
올스타전 경기 직전 전광판에는 박찬호의 현역 시절 영상이 흘러나왔고 관중석에는 함성이 터졌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텍사스 시절 영욕의 세월과 대한민국 대표팀과 2012년 한화에서 뛰던 모습들이 영상에 담겼다.
1990년대 후반 추억에 젖은 그라운드 사이로 검은 SUV 차량이 들어왔고, 한반도를 울리고 웃겼던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화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였다.
환호 속에 박찬호는 시구자로 마운드에 섰다. 공주고 선배 김경문 NC 감독의 포수 미트에 가볍게 공을 꽂아넣었다. 전설의 마지막 투구에 야구 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일부 팬들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김 감독과 깊은 포옹을 나눈 박찬호는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공로패, 한화 구단의 '61기념 컬렉센', 서재응 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의 감사패 등을 받았다. 이후 올스타 선수 전원과 악수를 나눈 뒤 의미 있는 헹가래까지 받았다.
박찬호의 마지막 자리에는 아내 박리혜 씨와 두 딸 박애린, 박세린까지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박찬호는 "영광스럽고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준 KBO와 후배 선수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애국심을 각인시켜 준 지인과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면서 "이제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해 살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MLB 첫 승도 아닌데…솔직히 슬프다"
'꿈 이뤘어요' 박찬호가 18일 올스타전에서 은퇴식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소감을 밝히고 있다.(광주=임종률 기자)
이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박찬호는 수많은 취재진에 "메이저리그 첫 승도 아닌데..."라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앉은 뒤 첫 마디는 "솔직히 슬프다"였다.
박찬호는 "이제는 정말 떠난다는 기분이 든다"면서 "2012년 등판한 경기가 마지막일 거라고 혼자 생각했는데 현실이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2012년 11월 은퇴 회견 뒤) 20개월 동안 다시 마운드 설 수 있을까 생각도 끊임없이 했다"면서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 오른다는 생각,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영광스러웠던 현역 생활이었다.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내는 등 통산 124승 아시아 선수 최다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1년 일본 오릭스를 거쳐 2012년 고향팀 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박찬호는 "은퇴 발표 후에도 심리적으로 불안해 훈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면서 "한화가 어려울 때 혹시나 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을 던져보기도 했다"고 후유증을 털어놨다. 이어 "골프를 시작하고 너무 못 쳐서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치유가 되더라"고 말했다.
▲1939년의 루 게릭처럼…꿈 이룬 박찬호 하지만 갈증은 남았다. 바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짓는 은퇴식이었다. 박찬호는 "미국에 간 지 3년 됐을 때 루 게릭의 은퇴식 비디오를 봤다"면서 "그래서 나도 언젠가 한국에서 저런 자리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력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그 마음은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루 게릭은 1920~30년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타자다. 1925년부터 1939년까지 2130경기 연속 출전으로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1939년 7월 4일 옛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구 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입니다"는 명언을 남겼다.
'아쉬운 은퇴 회견' 박찬호는 2012시즌 뒤 공식 행사 없이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선언해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은 그해 11월 회견 모습.(자료사진=윤창원 기자)
그러나 박찬호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꿈에 그리던 은퇴식을 갖지 못했다. 한화에서 여러 차례 은퇴식을 마련했지만 그때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 가운데 동료 후배들이 한국 야구의 전설을 위해 나섰다. 박찬호는 "동기인 홍원기 넥센 코치가 '너 같은 애가 그냥 사라지면 안 된다고 후배들이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면서 "야구팬들이 주목하는 경기라 굉장히 부담스럽고 영광스러운 자리였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런 박찬호가 "오래 전부터 상상했던 꿈꿔왔던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박찬호는 "올스타 게임에 주인공은 끝난 뒤에 나와야 하는데 내가 처음부터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으쓱해지는데 정말 소중한 날"이라며 황송해했다.
그래서 박찬호는 어릴 적 야구 스승이던 김경문 NC 감독에게 시구에 대한 포구를 부탁했다. 박찬호는 "같은 공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꿈을 준 분이고 OB(현 두산)에서 초등학교 야구장에 와서 캐치볼 하던 기억도 있다"면서 "미국에서 힘들 때도 용기를 주셨다"고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박찬호는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영웅 루 게릭의 은퇴식을 접한 1996년 이후 18년 만에 꿈을 이뤘다. 이제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됐다.